▶ 오피니언
▶ 방준재(뉴욕한인청소년재단 회장)
사전에는 인간의 부주의, 태만 따위가 주된 원인으로 일어나는 재해로 천재(天災)와 대비되는 말로 정의되어 있으나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 피해가 부주의나 태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직접 가하는 재난 현상을 논급하고 싶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빈도에서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타인간이 의도적으로, 지능적으로 초래한 피해 발생을 감지했을 때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과 정신적 황폐감이 뒤따르는 차이점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고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사고가 많았던 문민정부 시절 성수대교가 무너진 이면에는 부실공사를 한 인간들이 주체였지만 객체는 사고(思考)능력이 없는 건축물의 붕괴로 인한 인명피해였다. 간접적 인재라고 칭하고 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깊은 산골 토굴을 파고 풀뿌리를 캐먹으며 외부와 완전 차단된 상태에서 살지 않는 한. 가정에서부터 직장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우리 인간은 지적능력을 가진 타인간과 작용과 반작용의 반복 속에 매일을 살고 있다. 지적 능력이 있어 인간을 영장 동물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지적능력이 잘못 쓰여질 때는 모든 인재의 원인 제공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백치미라는 단어는 지적 능력이 전혀 없는 백치를 동정적으로 미화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때에 묻지 않은 순수미라고 해석하고 싶다. 어린아이들의 미소에서 우리가 느끼듯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교육과정을 거쳐 세속을 헤엄치며 적자생존의 단어를 알 때쯤 되면 때묻지 않음에 대한 열망은 향수처럼 까마득해지고 자연도태를 걱정하는 불안의 세월 속에 어떤 이는 더덕더덕 묻은 때를 지워가는 고행의 길을 걷는가 하면 어떤 이는 무감각, 무신경적으로 인간의 탈을 쓴 수인(獸人)으로 살아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서로가 피할 수 없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살이라면 천부적으로 물려받은 지적 능력을 타인에게 재해를 주는 인재를 초래할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랑을 구축하는데 쓴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또한 사회의 일개 구성원으로 물불 가리지 않는 이기적 행위의 연속보다는 한번쯤이라도 남을 먼저 앞세워 주고 밀어주며 아껴주는 이타적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그리도 연연하며 가지고 싶은 친구로 모두가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은, 그런 인간 세상은 진정 존재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보나 강한 희구를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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