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사는 이야기
▶ 전효숙 (윌셔연합감리교회 지휘자)
"모짜르트의 Eine Kleine Nachtmusik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직)!"
또 다시 아는 척 하고 자랑스럽게 말을 걸어오지만 이번에도 틀렸다. 그게 아니라 비발디의 "사계"라고 대놓고 말하면 무안해 할까봐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모차르트와 바하를 혼돈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남편은 사실 음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감히 콧노래 흥얼거리는 것조차 금기시 하던 "양반" 집안의 장손이기 때문이란다. 감정 표현은 극도로 절제하는 것이 미덕인지라 함부로 웃고 우는 천박한 짓거리(?)는 하지 않는 점잖은 집안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남편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 앞에서 통곡을 한 적이 있다. 추운 겨울, 까까머리를 하고 군대에 가야한다고 나타난 그에게 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선사했다. 난 그 눈물이 애처로웠고, 남의 눈에 눈물내면 내 눈에 피눈물 난다는 명언이 왜 하필이면 그 때 떠올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은, 결혼하자고 매달리던 돈 많고 잘 생긴 어떤 사내에게 시집을 가지 못하고 오늘날 요 모양 요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삼 년 후 그가 내 앞에서 근사하게 불러 준 "겨울 나그네"는 그 때의 눈물이 가짜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남편의 음악 인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눈을 감고 들으면 도밍고와 구별이 안된다. 목이 쉰다는 게 뭔지 모르고 자다가 일어나서도 한 곡조 근사하게 뽑을 수 있을 만큼 타고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왜 성악을 전공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나만이 아는 말 못할 사정이 있다. 피아노로 일일이 음을 쳐줘도 가끔 엉뚱한 소리를 내는 반 음치에다가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음맹일 뿐 아니라, 박자와 리듬을 마음대로 만들어 내는 기이한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을 사랑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번씩 발동이 걸리면 몇 시간이고 소리를 질러댄다. 부끄러움이란 불치병이 있어, 이웃 사람 괴롭다고 창문을 꼭꼭 닫는 것 정도는 잊지 않는다. 비록 내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긴 해도 성가대에서는 없어서 안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악회에 다녀오면 한마디씩 하는 비평이 제법 날카롭다. 내가 지휘하는데 대해 훈수들 거드는 것도 이제는 그리 싫지 않다. 무대 의상이며 음악회 순서까지 이제 그가 나서서 챙기기에 이르렀다.
이런 남편에게 강력한 후원자가 생겼으니 바로 시어머니다. 친구 친척들에게 아들 자랑을 하며 오빠부대까지 만들었는데, 문제는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아들이 도무지 "공연"을 하지 않고 은퇴를 해 버린 것이다. 만날 때마다 한 곡조 부탁을 해도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무안을 주고는 입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며칠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하루 종일 구석방에 틀어박혀 울음을 삼키던 남편은 뻔뻔스럽게도 자기가 조가를 부르겠다고 나섰다. 할 말이 없어야 할 죄인 상주가 경박스럽게도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이다. 집안 어른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고 분위기는 썰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천국가시는 길을 노래로 수놓겠다는 아들의 고집을 누가 말리랴? 어머니를 기리는 그의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었다. 거친 듯 부드러웠고, 불안한 듯 침착했으며, 슬픈 듯 유장함이 넘쳐흘렀다. 그것은 아들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부를 수가 없는 멋진 사모곡이었다.
"어머니께서 노래 잘하는 아들을 두셔서 무척 좋아하셨겠군요"
남편은 대답대신 눈물 고인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어머니께 바치는 노래가 마지막 사모곡이 될 줄은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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