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 중에 “사랑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사랑하면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미워하면 만나서 괴로우니” 하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고 완성된 사랑을 명령하고 있다.
과연 불교의 경전에서 말하는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아니다”라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기초는 이 천지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개미 한 마리, 날으는 새 한마리의 존재에서 부처를 발견하고 그 뜻을 새기라고 한다. 넓고 넓은 의미의 사랑이다.
또 기독교에서는 사랑의 완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배우라고 한다. 그렇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그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면 붉은빛으로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을 누가 더럽다고 하겠는가. 단지 아름다울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었을 때 모두 사랑을 깨닳은 것처럼 착각도 해 본다. 그래서 젊은이도 늙은이도 웃게 하고 울리기도 한다. 마치 인간을 놀리는 요술방망이처럼 마구 휘두른다. 또 이 방망이에는 자신들의 사연을 주렁주렁 매달고 흔든다. 이 모든 것이 자기 만족을 위한 사치라는 것을 모를 뿐이다.
배고픈 사람이 오랜만에 하얀 쌀밥을 얻어먹을 때, 그 밥맛이 평생 잊을 수 없듯이 목말라 목이 탈 때 얻어마신 한 숟갈의 냉수가 바로 생명수라는 사실을 배우듯이 사랑도 갈급한 상황에서 배워지는 것이지 굶주려보지 못한 그에게 사랑의 참뜻이 전달되지 못한다.
세익스피어의 말이 생각난다. “그 여자가 가장 행복할 때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극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면서 펑펑 울 때”라고 한다. 또 남자가 가장 남자다울 때가 “그 남자가 사자같이 열심히 일할 때“ 여자에게는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사랑은 어떻게 보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요즘은 빠르게 달려가는 컴퓨터시대에 살고 있어 모두가 바쁘다.
이런 시대일수록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이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우리 각자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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