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시대에 성경에 나오는 바라바는 강도로 묘사되고 있는데 단순한 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기록에는 그가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서 살인하여 포박된 자” “성 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인하여 옥에 갇힌 자” 등으로 되어 있어 아마도 로마의 지배에 반항한 유대민족운동 단체인 열심당의 두령인 듯 하다는 것이다.
예수가 유대인들의 무고로 빌라도에게 넘겨졌을 때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함을 알고 놓아주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했다. 그들은 예수가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민족을 구원할 구세주가 아니라 이단종파의 우두머리 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패스오버)을 맞아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예수와 바라바 중 한 사람을 살려 주겠다고 하자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구해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본 그 결과는 어떠한가. 유대민족의 독립을 쟁취하려던 열심당은 AD66년부터 70년까지 치열한 반란을 선동하여 예루살렘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그로부터 유대민족은 세계 곳곳에 흩어진 디아스포라가 되어 2000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의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민족운동을 외면하여 동족의 버림을 받았던 예수의 가르침은 기독교를 탄생시켜 2000년간 세계를 지배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유대민족의 존립 자체를 기독교 세계의 힘에 의지하고 있다.
이렇게 종교와 정치의 차원은 다르다.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힘은 정치에서 나오지만 그 힘의 생명은 매우 짧다. 반대로 종교적 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생명이 매우 길다. 정치는 표면으로 표출된 문제를 다루는데 반해 종교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근본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환자를 다루는 방식으로 말한다면 환부의 고름을 만지는 것과 온몸의 원기를 보강하는 것과 같은 차이이다.
그런 점에서는 석가모니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석가는 네팔과 인도 접경지역 샤키아족의 나라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결혼하여 왕자로서 편안한 생활을 하였으나 생로병사에 대한 고민에 부딪혀 고의 본질을 추구하고 해탈을 구하고자 29세에 출가, 고행끝에 득도를 했다. 그가 왕위를 이어받아 나라를 다스렸던들 그 나라가 얼마나 번영하였겠는가. 석가모니가 창시한 불교의 힘에는 도저히 미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정치를 좋아하고 정치판에 끼기를 즐기는 종교인들이 많다. 물론 종교인이라고 하여 현실문제를 도외시하거나 초연할 수는 없다. 종교적 가르침에 역행하는 세상일에 대해서는 선지자들 처럼 경종을 울려야 하고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정의를 거역하는 힘에는 저항하는 것이 종교적인 삶일 것이다. 그러나 시시콜콜 정치에 휘말린다면 종교의 차원을 정치의 차원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웬만한 인격이나 명성을 가진 학자나 전문인들도 정치판에 들어가면 어느새 흙탕물을 뒤집어 쓰는데 종교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더구나 종교적 도그마가 정치의 힘을 가지게 되면 종교의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끼친다. 역사상 권력을 가진 요승들이 때때로 등장하여 사회를 어지럽히고 나라를 망친 예가 많이 있으며 이란의 호메이니와 같은 암흑정치를 한 예도 있다. 최근 한국에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이 야당 총재를 죽이는 독설을 하여 찬반 논쟁이 시끄러운데 그 말의 진위를 떠나 그는 스스로 참종교인의 자리를 걷어 찬 셈이다.
빌라도 앞에 서서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그래도 정치를 하겠다는 종교인이 있다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도 하나님에게” 라고 말한 예수 앞에서 예수와 바라바 중 양자 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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