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고 한미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기위해 만들어진 샌피드로 우정의 종각을 보존하는 일은 우리 한인사회의 몫이다."
1975년초 서울 양재동에서 범종사 제작팀의 일원으로 우정의 종 제작에 참여했던 김동일(51·다이아몬드바)씨는 보기 흉하게 녹이 슨 종을 어루만지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50여명의 전문가들이 1년반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한미우호의 상징이 LA시와 한국정부, 그리고 한인사회의 무관심 속에 보기 흉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니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만든 종이 있는 곳에 살고 싶어 81년 LA에 온 김씨는 20년 가까이 매달 한두차례씩 종각을 찾아가 새 배설물과 쓰레기를 치우고 지나치는 관광객들에게 종각에 담겨있는 의미를 설명하는 일을 마치 종교처럼 해왔다. 85년 6월에는 시당국의 특별허가를 얻어 이곳에서 전통혼례식을 올리기도해 한인사회의 화제를 모았었다.
6·25전쟁때 부모를 잃은뒤 해인사와 조계사를 전전하면서 불교미술과 금속공예를 체득했던 김씨는 우정의 종을 "신라시대 만들어진 에밀레 종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만들어진 국제적 문화재"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전문가들의 문헌 고증에 따라 구리 83%와 말레이지아산 납, 은, 금등 비철금속 17%를 1300도의 용광로에 녹여서 17톤짜리 거대한 종의 조형을 떴고 자유의 여신상과 한국의 전통 여인상을 운무위에 얹어 활짝 핀 무궁화와 함께 조각해 넣었다. 종각에 새겨진 한미 친선의 문구는 민족문인인 이은상, 박종하씨가 공동 집필한 것이다.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일에도 먼발치서 타종모습을 지켜봤던 그는 "훼손돼 가는 종을 보수하자는 말은 한마디 없이 기념식만 하고 돌아서 가는 한국정부 인사들과 단체장들이 밉게만 느껴졌다"며 "한인사회와 LA시, 그리고 한국정부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만 미국내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로터스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지금도 불상과 종 제작을 생업으로 삼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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