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이후 17년 만
▶ 기업들 손실 눈덩이
▶ 유학생·주재원 ‘패닉’
▶ 한인도 ‘시름’ 마찬가지

중동전발 유가 급등,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19일 서울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
중동 정세의 극단적 불안이 국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500원 선을 돌파하며 한국 경제 전반에 ‘환율 쇼크’가 몰아쳤다. 여기에다 수입 물가 상승과 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라는 악재가 겹치며 기업과 개인 모두 패닉 상태에 빠졌다.
20일(한국시간) 새벽 2시 원·달러 환율은 전장 서울환시 종가 대비 11.90원 상승한 1,49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번 장 주간 거래(9시~3시 반) 종가 1,501.00원 대비로는 6.00원 낮아졌다. 하지만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전날보다 17.9원 급등한 1,501.0원을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0일(1,511.5원) 이후 약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시중 은행의 공항 환전 창구 판매가는 이미 1,560원을 넘어서며 체감 환율은 훨씬 가혹한 상황이다.
이번 폭등의 도화선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다.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폭격과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하자, 시장은 안전자산인 달러로 쏠렸다.
환율 상승은 전통적으로 한국 수출 기업에 호재로 인식됐으나, 이번엔 양상이 다르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동시에 뛰는 ‘고환율·고유가’의 이중고 때문이다.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하는 제조 기업들은 당장 생산 단가 급등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미 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도 현지 마케팅 비용과 물류비 상승으로 인해 환차익 효과가 상쇄되고 있다. 항공·해운업계는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유류비와 리스료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경영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한국 물류기업의 LA 주재원은 “3개월 전에 미리 당시 환율과 선박유 가격을 반영해서 선박을 계약하는데 환율과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회사가 손실을 모두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미국 내 창고 임대료와 인건비도 달러로 지출되는데, 본사에서 보내주는 원화 예산으로는 운영 자체가 안 된다”며 “하반기 신규 투자는 전면 백지화하고 오직 생존 모드로 전환한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 주재원과 유학생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매달 달러를 송금해야 하는 기러기 아빠나 유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매일 아침 환율창을 보며 한숨을 내뱉는다. 환전 수수료를 포함하면 1달러당 1,600원에 육박하는 현실에 실질 소득이 반토막 났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UCLA 재학생 김씨는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생활비는 정해져 있는데, 환율이 이렇게 뛰니 월세와 식비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미국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 사회 역시 소비 위축과 한국 내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시름이 깊다. 플러튼에 사는 한인교포 최씨는 “한국에 남겨둔 자산이 원화 베이스인 만큼 달러로 환산하면 가치가 뚝 떨어져서 노후 대책에 다소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환율의 상단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기업과 개인 모두 초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외 발언 등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며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1,500원이라는 심리적 지지선이 무너지면서 이제 시장은 오버슈팅(일시적 폭등) 구간에 진입했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이 공공요금과 소비자 물가를 밀어 올리고, 이것이 다시 금리 인하를 지연시키는 악순환이 시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전쟁 전개 양상에 따라 환율 1,600원 선도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는 만큼 기업과 개인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유동성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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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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