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사법개혁 논의에 사법부가 강한 우려를 표하며 전국 법관들의 의견 수렴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정치권 논의에 대해선 최대한 거리를 뒀던 관행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바꾸는 논의가 당사자인 사법부는 배제한 채 ‘추석 전 본회의 통과’가 기정사실화되자 법원이 서둘러 공론화 채널을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내부 기류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중심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제시한 5대 의제는 △대법관 증원(14명→26명 혹은 30명)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 △법관 평가제도 변경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 도입이다. 이 가운데 ‘하급심 판결문 공개’와 ‘압수·수색 영장 문제’는 사법부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법관 증원과 추천 절차, 법관 평가제, 사법부 의견 배제와 속도전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① 대법관 증원이 국민을 위하나
민주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30명으로 증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국민 권리 구제를 위해선 사실심, 즉 1·2심의 신속하고 충실한 심리가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사건 대부분이 1·2심에서 확정되는데도, 정작 하급심에선 법관이 늘어나지 않아 지난 10년간 사건 적체가 심각했다는 것이다. 1심 재판 평균 처리 일수는 2014년 대비 2023년에 87.6% 증가했고, 1심 재판 미제 건수는 같은 기간 33.3% 늘었다. 반면 대법원의 상고심 본안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감소 추세다.
여당 구상대로 대법관을 늘리면 서울시내 지법 두 군데를 폐쇄해야 할 수준의 인사이동이 불가피하다. 대법관을 보좌할 재판연구관 174명을 대법원에 배치해야 하는 만큼 1·2심 사건 적체는 심화할 수밖에 없다.
② 정당 추천 인사가 법관 평가
사법부는 법관 평가문제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법부의 각종 판결에 수긍하기 어렵다는 정치권 불신이 커지는 가운데,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 7월 ‘국회 교섭단체 즉 정당이 추천한 인사 등 외부인이 들어가 법관 평가에 참여하고, 결과를 공개하겠다’는 취지의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면서 “독일 등의 경우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평정회의가 개최되고 결과가 공표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의 법관 평가는 각급 법원장과 내부 법관이 주도하고, 법관 업무 평가에선 판결 내용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한다는 게 법원행정처 설명이다.
③ 내란특별재판부 논의와 속도전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논란도 사법부를 자극했다. 정당이나 특정 단체가 법관의 사건 배당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사법권 독립을 명백히 침해한다는 게 사법부 입장이다. 사건 배당 무작위성은 재판 독립성·공정성 신뢰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체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헌법상 독립된 판사에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분명하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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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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