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나치당의 권력 장악 후 아돌프 히틀러는 제3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몇 개의 야심 찬 계획을 수립했다. 그 프로젝트의 완결판이 하계 올림픽이었다.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는 제11회 올림픽은 히틀러의 계획대로라면 금빛 머리 휘날리는 아리안 민족의 축제로 끝날 것이었다.
하지만 히틀러의 기대는 이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8월 3일에 육상 100m 경주에서 미국의 흑인 선수 제시 오언스가 독일의 에리히 보르흐마이어를 제치고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다음 날 멀리뛰기에서도 오언스는 유럽 신기록 보유자인 독일 선수를 누르고 1등을 차지했다. 예선에서 거듭된 실격을 딛고 일궈낸 결과였기 때문에 관중들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오언스는 200m 달리기에서 세계기록으로 우승했고 4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오언스는 트랙 바깥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올림픽의 전설이 됐다. 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히틀러가 축하를 거부했다는 ‘악수 거부’ 사건이다. 이 소식은 루머에 불과했지만 정황으로 볼 때 이유가 없지도 않았다. 100m 결승전에서 오언스가 우승한 직후 히틀러가 아예 모든 선수들에게 공개적으로 축하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 자체가 관례에서 크게 벗어난 일이었기에 자세한 상황을 모르던 미국 언론은 히틀러가 인종적 이유에서 전통을 배반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후 오언스는 인종차별에 맞서 투쟁한 아이콘이 돼버렸다.
화제성 높은 오언스에 가려 세계적 스타로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8월 10일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손기정도 베를린의 인종주의적 분위기를 흔드는 데 기여했다. 경우가 다르기는 했지만 손기정도 트랙 바깥의 상황 때문에 민족의 영웅이 됐다. 일장기 말살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부상으로 받은 고대 그리스 투구는 2000년이 넘는 시간과 동서양의 거리를 초월해 인류 보편의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최호근 / 고려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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