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내란 사건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였다. 재판을 위해 법정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기자들의 많은 질문을 받았던 그는 단 한 번도 질문에 응하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지만 한 가지 달랐던 것은 “지지자들을 볼 수 있게 가로막지 말고 좀 빠져 달라”면서 질문하던 기자를 밀어낸 것이었다. 이런 윤석열의 모습은 그의 정신세계를 지탱해주고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었다.
윤석열은 법정 주변에 나와 자신의 이름을 외쳐대는 소수의 극렬 지지자들에 기대어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반 헌법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7개월 째 단 한마디 사과의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그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여전히 확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실은 그와 아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변호사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이 변호사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윤 전 대통령은 상당히 낙천적이고 건강하다”고 근황을 밝힌 뒤 “재판과 관련해 저희가 여쭤보면 ‘이건 100% 무죄’ ‘증인들 말이 안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어떻게 이토록 기이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인식이 가능한 것일까. 이 질문은 그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부터 제기됐던 것이다. 그는 정말로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당시 그는 이성적 판단이 결여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윤석열이 내란 사태를 일으킨 것과 관련, 며칠 후 일본 자위대의 한 정보전문 장성은 “그가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에 빠진 것 같다”고 진단하면서 “자신을 지지하고 반대 세력을 극단적으로 깎아내리는 목소리가 듣기 편하자 결국 거기에 빠져든 것 같다”고 풀이했다. ‘에코 체임버’는 특수재료로 벽을 만들어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소리를 메아리처럼 울리게 만든 ‘반향실’이다. ‘에코 체임버’ 현상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그들의 사고방식이 돌고 돌면서 신념과 믿음이 증폭되고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윤석열이 취임 후 자신에 대해 쓴 소리를 하는 기성언론들보다 극우 유튜브 채널을 즐겨봤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취임 후 공사를 구분 못하는 인사가 이어지고, 자기합리화로 비판여론을 외면하는 모습이 지속되자 몇 달 지나지 않아서부터 ‘에코 체임버’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에코 체임버’ 현상은 특히 양당제 국가에서 더 극심한 것으로 나타난다. 국민들 사이의 ‘에코 체임버’ 현상도 문제이지만 국가지도자가 자신과 다른 견해에 귀를 기울이길 거부하고 여기에 빠져든다면 그 결과는 한층 더 심각하고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항상 자신과 다른 견해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피그스만 침공 실패로 쿠바 핵 위기가 고조됐을 때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에코 체임버’에 갇히지 않기 위한 자세로 대응책을 모색했다. 자신은 대응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동생 로버트 케네디에게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맡도록 했다. 또 전 정부 인사들까지 토론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모든 통로를 열어 놓고 다양한 이견들을 취합했다. 그 결과 선제공격 지지와 해상봉쇄 지지라는 두 가지 권고안이 제시됐으며 케네디는 이 가운데 해상봉쇄를 선택해 핵전쟁 위기를 해소했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국가지도자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 현실과 유리된 세계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다. 윤석열이 바로 그랬다. 새로이 국가경영을 맡게 된 이재명 대통령에게 윤석열의 실패는 두고두고 들여다봐야 할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