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내에서 30명 남짓 진단받은 CAPS
▶ 38~39도 고열 후 며칠 지나 회복 반복
▶ 숨겨진 환자 훨씬 많을 가능성 높아
▶ 감기 증상 비슷, 수년 동안 병원 전전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성헌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희소 질환인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38~39도의 고열이 나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아져요. 이런 일이 보통 2~4주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다 보니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인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발병 원인이 뭔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에요. 증상이 있는데 어떤 병인지 알 수 없어 병원을 계속 옮겨 다니는 ‘진단 방랑’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성헌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진단까지 5~10년 걸린 경우도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이러스·세균 감염 없이도 반복적으로 고열과 피부발진(두드러기 포함)이 나타나며 진단 방랑을 부르는 이 병은 희소 질환인‘유전성 재발열 증후군’이다.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 중 한국에서 보고된 사례가 가장 많은 건 ‘크라이오피린 관련 주기성 증후군(CAPS)’이다. CAPS는 주로 영유아 때부터 증상이 시작된다. 국내에서 해당 질환을 앓는 이는 현재 30명 안팎. 김 교수는 “진단이 어렵다 보니 숨겨진 환자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질환 이름부터 생소한데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은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앓게 되는 병이다. 몸 안의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자극이 없거나 가벼운 자극에도 과도한 면역반응이 나타난다. 고열과 관절통, 근육통, 관절염, 피부발진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2~4주 간격으로 같은 증세가 반복되는 것도 특징이다. CAPS를 유발하는 유전자(NLRP3)가 밝혀진 게 2000년대니까 인류가 이 병에 대해 제대로 알기 시작한 게 이제 20년 남짓 됐다.
-감기 등과 비슷해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어린이는 감기 같은 호흡기 질환에 잘 걸리는데,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 증상이 이런 호흡기 질환 증세랑 비슷하다. 증세가 심하지 않으면 감기로 생각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수년 동안 소아과, 피부과, 안과 등을 전전하는 경우도 많다. 환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진단받기 전까지 두드러기가 자주 나니까 알레르기 질환이다, 관절 등이 아프니 성장통이다, 감기에 자주 걸리는 것을 보니 면역력이 약하다 등의 이야기를 여러 병원에서 들었다고 한다. 해외 연구 결과에선 진단까지 평균 10년 안팎 걸리는 것으로 보고됐다.
-어떤 증상이 있을 때 CAPS로 의심할 수 있나▲발열이 6개월 이내, 일주일 이상의 간격을 두고 3회 이상 반복되는 경향이 있고, 병원에서도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 열이 나지 않는데도 체내 염증 수치가 계속 올라가 있는 것도 신호로 볼 수 있다. 찬 공기에 노출 시 두드러기가 많이 생기는 것 역시 의심 증상이다.
-유전자 검사로 100% 진단을 할 수 있나▲유전자 검사 기술이 계속 발달하고 있지만 CAPS 환자 10명 중 절반은 유전자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증상만 보면 CAPS인데, 유전자 검사에선 문제가 없다고 나오면 의료진도 난감하다. 그럴 때는 어떤 면역 경로에 문제가 있는지 분석하는 식으로 접근한다. 이상이 생긴 면역 경로를 보고 그와 관련한 유전자에 문제가 있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어렵게 진단을 받더라도 종전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우선 부딪히게 되는 건 ‘주사 공포’다. “염증반응을 억제하는 특정물질(아나킨라)을 담은 주사를 매일 맞아야 하는데, 아이들 입장에선 큰 두려움이다. 1년 365일 내내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 주사를 조금이라도 늦게 맞으면 열이 바로 오르니 안 맞을 수도 없다.
다행히 한국내에서 허가받은 지 9년 만인 지난해 다른 치료제(일라리스)가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되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건강보험 적용 조건에 따라 8주에 한 번만 일라리스 주사를 맞으면 된다. 주사 맞는 횟수를 56번에서 1번으로 줄일 수 있단 뜻이다.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CAPS 등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은 평생 관리를 해야 하는 질환이다. 평생 주사를 매일 같은 시간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환자는 물론, 가족에게도 힘든 부분이다. 지난해부터 치료 효과가 개선된 일라리스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연간 비용(1억~2억 원)의 약 10% 정도만 환자가 부담하면 일라리스 주사를 쓸 수 있게 됐다.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주사 맞는 주기도 길어져 환자가 느끼는 심적 부담도 덜 하다.”
-일선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없나▲일라리스의 건강보험 적용 요건은 8주다. 8주 간격으로 주사를 맞는 경우에만 보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8주의 근거가 된 과거 해외 연구 결과를 보면 연구에 참여한 환자 중 증세가 경미한 환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최근엔 증세가 심한 CAPS 환자의 경우 8주 간격으로 주사를 맞으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본만 해도 의사의 판단에 따라 주사 맞는 주기를 좀 더 짧게 조정할 수 있다. 좀 더 많은 연구 결과가 쌓여야겠지만 급여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해 증세가 심하면 4~6주 간격으로 주사를 맞을 수 있게 하는 것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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