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사재기’ 열풍이다. 너도나도 금을 사겠다고 난리다. 하루 금 거래액이 사상 처음 1,000억 원을 돌파(5일)한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순금 한 돈(3.75g) 가격이 60만 원이 넘는데도 ‘트럼프 효과’로 ‘더 오른다’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급기야 한국조폐공사가 시중은행을 통한 골드바 판매를 중단했다.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해서다.
이런 와중에도 금을 기피하는 기관이 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다. ‘금 보기를 돌같이 한’ 지 12년째다. 각국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금을 사들이는 것과 정반대 행보다. 지난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사들인 금은 1,185톤에 달한다. 당연히 금 보유량 순위도 뚝뚝 떨어진다. 2013년 32위에서 작년엔 38위까지 내려앉았다. 외환보유액(4,110억 달러)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9위이지만, 금 비중은 1.2%로 꼴찌다. 평균(24.6%)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한은이 현재 보유(104.4톤)한 금의 대부분(90톤)은 2011년에서 2013년 초에 사들였다. 당시 김중수 총재의 ‘과감한’ 결단이었다. 그 이전까지 한은은 금 매입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금값은 계속 오르는데 “이자 없는 무수익 자산인 데다 위기 시 현금화가 쉽지 않다”는 신중론 뒤에 숨어 번번이 매입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하필 ‘상투’였다. 매입 당시 온스당 최대 1,900달러이던 금값은 줄곧 내리막을 걸으며 2016년 1,0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이번엔 ‘고가 매입’으로 여론 질타를 받아야 했다.
사도 욕 먹고, 안 사도 욕 먹는 ‘금 트라우마’ 속에 한은은 다시 ‘안 사고 욕 먹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이 불붙인 관세 전쟁에 국제 금값은 조만간 온스당 3,000달러를 돌파할 거란 예상이 줄 잇는다. 만약 2016년 사들였다면 수익률이 200%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한은은 과도한 변동성,보관 비용,낮은 유동성 등의 이유를 댄다. 2010년 이전과 똑같은 논리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답도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건, 실력의 문제일지 모른다.
<이영태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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