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래사 43주년 기념법회뒤 기념촬영.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29일 낮, 샌프란시스코 남쪽 샌브루노에 자리잡은 여래사의 개원 43주년 기념법회가 봉행됐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주석하다 이 행사에 맟춰 북가주에 온 여래사 창건주(회주) 설조 큰스님과 올해 봄부터 상주 주지소임을 맡고 있는 금산승원 스님, 김석진 신도회장 등 3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봉행된 이날 개원법회는 오전 11시에 시작됐다.
관세음보살 정근에 이어 여래사의 부처님 도량다움과 여래사 사부대중의 부처님 제자다움을 소망하고 다짐하는 내용이 담긴 발원문 낭독, 부처님 큰지혜의 핵심을 담은 반야심경 봉독이 끝난 뒤 참가자들의 청법가에 부응하여 법상에 오른 설조 큰스님은 짧은 인사에 이어 곧바로 의미심장 질문을 던졌다.
“6개월만에 뵙습니다. 오늘은 여래사가 개원한지 43주년이 됐습니다. 여러분한테 아주 좋은 그릇이 생겼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법당에는 일순 침묵이 흘렀다. 스님은 좌중을 굽어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값이 비싸도 쓰는 용도에 따라서 제사에 쓰면 제기가 될 것이고 과일을 담으면 좋은 과일그릇, 과자를 담으면 과자담은 그릇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겐 소중한 하나의 그릇, 즉 법기가 있습니다. 이 세상 하나뿐인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은 뭐든 담을 수 있습니다.”
뭐든 담을 수 있다고 아무거나 담아도 된다는 말은 물론 아니었다.
“귀한 우리마음에 부처님 말씀을 담고 가족간 사랑을 담아서 우리 스스로 행복을 누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느 부처님도량의 개원법회에서도 들을 법한 법문은 여기까지였다. 정중하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그 그릇에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매우 분명하게 일러준 스님은 잠시 뜸을 들인 뒤 “여래사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80년대 초에 전두환을 대통령이라 하지 않고 반란장군이라 해서 여러사람이 해를 입었습니다”라며 여래사가 왜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개원법회를 봉행하게 됐는지, 보다 정확히는 여래사가 왜 43년 전 그해(1980년) 10월 그 즈음에 개원하게 됐는지, 아픈 역사를 더듬는 법문을 이었다. 즉 10.27법난과의 인연담이었다.
법난 정보를 귀띔받고 당일 저녁 부랴부랴 LA로 피신한 일, 때마침 구산 큰스님의 당부 겸 분부에 따라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해 어느 한인불자 자택 한켠에서 ‘사글세 여래사’를 열었던 일, 법회 때든 아니든 전두환 신군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복적으로 날선 비판을 거듭한 때문에 ‘불순한 중이 이끄는 여래사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공관 외교관이나 지상사 주재원이 좌천/인사이동 등 탄압을 받은 일, 심지어 스님의 목숨을 노린 독극물 테러미수사건을 당했던 일 등 스님의 이야기는 12시10분쯤까지 30여분에 걸친 법문으로 모자라 법문 뒤 법성게 봉독, 산회가, 생일케익 앞에 놓고 돌아가며 기념촬영(사진)에 이어 이날 모임을 마무리하는 공양시간에도 한참 더 계속됐다. 스님은 이달 중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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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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