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월남전·2차세계대전
▶ 종전 기념 샌디에고서 열려
2차대전 한국전 월남전 등 3대 전쟁 참전용사 한국전에서 전우 가장 많이 잃어 슬퍼...
지난 13일 영예로운비행샌디에고(Honor Flight San Diego)가 주최한 한국전 종전 70주년, 월남전 종전 50주년을 겸한 2차세계대전 종전 기념식 ‘45년의 정신’이 샌디에고 다운타운에 있는 리버티 스테이션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렸다.
지역의 한 매체에 따르면, 매년 8월 2번째 일요일에 열리는 대일전승기념일(V-J 또는 Victory over Japan Day)로 알려진 이날 행사에 참석한 200여명의 참전용사들 가운데에는 3개 전쟁에 모두 참전한 용사들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영예비행의 줄리 브라이트웰 회장은 자원봉사자들이 2차대전 참전용사 데이타 베이스에 있는 1,000여명을 대상으로 개별접촉을 통해 이중 50명을 이자리에 모시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행사에 참석한 제이콥 모건(98) 예비역 해병대 대령은 (참가했던 3개 전쟁 중)한국전쟁이 가장 힘들었었다며, 그 이유는 “내 절친과 많은 친구들을 잃었기 때문에”라고했다. 그러면서 “폭탄이 터져 사망하거나 임무수행을 위해 출동했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화력통제사격수로 참전했던 용사 중에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짐 파이번은 “내 임무는 폭탄 격납고를 날려버리고,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그화력(이 어땠는지)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즉 그 타격을 사진에 담으라는 신호”라며, “그날 공격으로 북한과 만주일대 모든 불이 꺼졌다”고 했다.
“굉장했어, 2만8,000피트 상공에서 2,000파운드 철갑탄(갑옷을 뚫는 탄환)을 수력발전소 ‘수호댐’의 굴뚝으로 떨어뜨렸을 때 마치 스위치를 밑으로 당긴 것처럼 불이 나갔고 40마일 밖까지 (깜깜해 지는 것을)볼 수 있었다니깐”이라며 그날의 전과를 또렸하고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는 요코타 공군기지에서 출격하는 제98 운영그룹 포탄병이었다며,“우리는 1952년 9월12일 그곳에서 무기를 실어 날랐다”고 회고했다.
세픈스는 이 기념비적 여행(수도 워싱턴으로 향하는 영예비행)에 대해 “내생에 가장 좋았던 일 중 하나였다”라며, “내 나이가 97세인데, 만약 내가 또다시 97세를 산다해도 영예비행처럼 멋진 일은 없을 것”이라며, “그여행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 모두 멋지고 훌륭한 분들이었다”고 했다. 또 3개의 전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의 질문에 “잽싸게 뛰고 낮은 포복으로 납작 기어다녔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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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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