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프로그램 활용해 몰수패, 바둑 종주국 자부심에 생채기
중국의 20대 바둑 기사의 실수 하나가 바둑 종주국 중국의 자부심에 작지 않은 생채기를 냈다.
2019년 프로 기사에 입단한 24살의 류루이지 기사는 지난 15일 열린 중국 프로 바둑 선수권대회 1차 라운드 대국에 참가했다. 류 기사는 가볍게 상대를 제압했고, 그렇게 2차 라운드에 진출하는 듯했다. 하지만 중국 바둑협회는 16일 그의 몰수패를 선언했다. 대국 도중 AI(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몰래 활용한 게 들통나면서다.
최근 중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주최 측은 이번 대회를 ‘온라인 대국’ 형식으로 실시했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바둑 좀 둔다’ 하는 나라들 역시 비슷한 사정으로 온라인 대회를 열고 있다.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시대의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접속 장애, 시스템 불안정은 물론, 무엇보다 치팅(cheating·부정 행위)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상대편 기사를 관찰할 수 있는 카메라를 설치한다고 해도, 컴퓨터 화면까지 감시하긴 어렵다. 이번 대회 주최 측도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각 기사에게 감독관을 1명씩 붙였지만, 컴퓨터 어딘가에서 가동되고 있는 AI 프로그램까지 알아차리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바둑계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AI의 우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졌다. 2016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뒤 세계 1인자로 불리는 중국의 커제 9단 역시 2017년 AI와의 대국 뒤 “AI는 바둑의 신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완벽한 패배를 인정했다. 이후 AI와의 대국은 프로 기사에게 2~3점을 먼저 깔아주는 게 관례로 굳어졌다.
하물며 프로 기사가 AI의 계산까지 참고했으니 애당초 뻔한 대국이었다. 중국 바둑협회는 부정행위 처벌 규정에 따라 류 기사의 대회 참가 자격을 1년간 정지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부정행위를 저지른 류 기사는 2019년 프로에 입단했지만, 그 이후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AI 치팅’ 유혹에 넘어가고 만 셈이다.
중국 바둑계는 류 기사가 버린 양심도 문제지만, ‘기싸움’이라는 바둑의 묘미가 흐려지고 있는 점을 더 우려했다. 중국의 한 바둑 전문가는 현지 매체 글로벌타임스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 기술뿐 아니라 정신력을 겨루는 게 바둑의 즐거움인데, 인간을 뛰어넘은 AI를 데려오는 순간, 이미 이런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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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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