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 탄생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4년은 끝나는 시각까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악몽 같은 시간이다. 조 바이든이 그보다 얼마나 더 잘 할런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것보다 우선 궤도를 이탈했던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 전염병의 불안감과 상한 자존심,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일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안팎에서는 대부분 트럼프의 재선을 기대했던 것 같다. 보수 언론과 야당들은 한국의 진보정당과 가까울 미국의 민주당 출현이 마뜩찮은데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으로 부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대중국 압박에 시달리는 것을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을 수도 있다. 미주지역 일부 한인언론에서는 보수화로 경직된 한인사회에 영합하기 위해 트럼프 재선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부풀려 놓았다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문재인 정부마저 트럼프의 재선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고 친서를 교환했던 주된 이유가 그의 재선 전략 때문이었던 것을 모를 리 없는 문재인 정부다. 그런데 트럼프가 재선된 뒤에도 그때와 같은 열정으로 한반도 문제를 매듭지어줄 것으로 기대했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바이든 정부의 탄생은 한국과 한국인에게 큰 기회이자 도전이다. 바이든은 국제적인 현안들을 외교적 해법으로 접근하며 햇볕정책도 지지했던 합리적인 정치인이지만 그의 정부에서 국무장관이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거명되는 인물은 뜻밖에 강경한 인물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국내 외교 전문가와 해외 동포사회의 공공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바이든 측 인사들과 치열하게 협의해야한다. 트럼프 때 겪어봐 알듯이 한민족의 일은 한민족의 몫이지 결코 다른 사람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동맹 체제를 존중하는 바이든 시대에는 대북정책에서 한국의 주도권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큰 성과를 보겠다는 조급성을 보여서는 안 된다. 김대중 정부 시절 클린턴 정부와 잠시 만났던 이래 20년 만에 찾아온 한미 양국 간 진보정권의 조합을 소중하게 살려나가야 한다.
북한은 오는 1월, 8차 당 대회를 열어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고 하는데 행여라도 바이든 정부를 향해 무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거나 초반부터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기 바란다. 대북제재나 종전선언 등을 풀어나가기 위한 중재자는 한국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에 서둘러 남북 간 정상회담을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명사적으로 보면 지금은 유럽의 쇠락에 이어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도 끝나가면서 아시아가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최초로 아시아계 여성부통령이 당선된 것이나 다수의 한인 연방하원이 탄생한 것도 그런 조짐이다. 중국과 인도,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중심국가인 한국으로서는 한반도 문제 외에 미중 간 패권 다툼을 외면할 수가 없다. 바이든 시대에도 미국의 제일주의와 인도-태평양 전략은 계속되겠지만 동맹의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며 이성적으로 대해 준다면 한국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대륙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대척지점에서 모두가 윈윈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K 방역으로 국가적인 위상이 올라갔고 WTO 수장에까지 도전했던 한국이 이제는 한반도 평화를 넘어 지구촌 곳곳의 전쟁과 억압과 군사주의를 배격하며 아시아의 융성과 평화를 위해서도 선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 때마침 한국의 5.18 기념재단에서 매년 5월18일을 ‘유엔 지정 세계 군사주의와 권위주의 방지의 날’로 제정하자는 활동을 벌이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일로 보인다. ‘다시 돌아온 미국’ 과 ‘바이든 시대’의 도래로 아시아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거인, 한국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우뚝 빛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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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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