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정부가 지난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로 유예하고 수출규제 관련 국장급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으나 협상 타결 과정을 둘러싸고 양국의 신경전이 첨예하게 불붙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일제히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아무런 양보도 없었다" "퍼펙트 게임"이라며 '외교적 승리'를 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청와대는 "의도적 왜곡이자 견강부회" "한국의 판정승"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산케이신문 등은 24일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 등을 인용해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유예 결정을 자신들의 외교 성과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양보를 했고 일본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한일 양측의 협상 결과가 일본에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소미아 종료 정지 직후 주위에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라며 "미국이 상당히 강해서 한국이 포기했다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고 일본 아사히 신문이 전했다.

산케이신문은 전날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가 "거의 이쪽(일본)의 퍼펙트게임"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다 요이치(飯田陽一) 일본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원료 등 3품목을 개별적으로 심사해 한국에 대한 수출 허가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혐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전 주한 일본대사는 요미우리신문을 통해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가 심해질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날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며 견강부회"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기 후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 "언론에 보도된 아베 총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지극히 실망"이라며 "일본 정부의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또 '미국이 상당히 강해서 한국이 포기했다'라는 아베 총리의 발언이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한 미국의 입장을 우리 정부가 의식해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해석되는 것에 선을 그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미 간에 주한미군 문제는 일절 거론되지 않았다"면서 "한미 동맹이 그리 만만한 동맹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일 간 지소미아가 그렇게 굳건한 한미 동맹의 근간을 훼손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라고 부연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8월 23일 지소미아를 종료하겠다고 통보한 다음 일본이 그제야 우리와 협의하자고 제의해온 것"이라면서 "그때부터 외교채널 간 협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양보가 없었다'는 일본 측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정 실장은 "전혀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자신들의 논리로 합리화하려는 것"이라며 "이는 사자성어로 말하면 '견강부회'"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일은 양국 간 수출관리 제도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확인해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해소하는 방안을 협의하기로 한 것"이라며 "일본이 이런 입장으로 협상했다면 우리가 애초 합의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일본 측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개별 심사 후 수출 허가 방침이 변함없다고 한 것을 두고도 "한일 간 사전에 조율한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 실장은 또한 지소미아 종료 연기 과정을 일본이 사실과 다르게 발표한 데 정부가 항의했고, 일본 측은 이에 대해 사과하는 한편 '합의 내용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 측은 정 실장의 이런 언급을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일본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이날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가 정 실장의 발언에 대해 "그런 사실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한국 내에는 지소미아 종료 연기가 일방적인 양보라는 비판이 있다"며 "일본에 항의함으로써 국내의 비판을 피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