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지내십니까] 불모지 미주한인 통계조사 ‘김씨 성’ 표본 등 실체 파악, 정책에 반영시킨 ‘프런티어’
▶ 은퇴 10년간 강의 동분서주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 전수 “한인도 사회적 책임 다해야”
![[인터뷰] 유의영 전 칼스테이트 교수 “한인연구에 바친 40년 삶 정리 자서전 집필 중” [인터뷰] 유의영 전 칼스테이트 교수 “한인연구에 바친 40년 삶 정리 자서전 집필 중”](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9/11/06/201911062339155d1.jpg)
유의영 전 칼스테이트 LA 교수는 현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서전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유의영 전 칼스테이트 LA 교수는 ‘재미 한인 연구의 프런티어’라 불린다. 그는 50여년 전 미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40여년간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
은 미주 한인관련 인구 조사, 커뮤니티 연구 프로젝트 등 한인 리서치에만 전념해왔다.
그가 미국에 온 반세기 전만 해도 한인들은 어디에 모여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지 등에 대한 윤곽조차 잡히지 않던 시절이었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재미 한인 연구 영역은 그를 비롯한 많은 한인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지금은 객관성을 인정받을 정도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유 전 교수는 10년 전 공식적인 직함에서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동분서주하고 있다. 미국살이 반세기를 정리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서전 집필에 몰두하는데다 이곳 저곳에서 요청하는 강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만큼 ‘마무리’도 잘 하고 싶다”는 그로부터 지나온 인생담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유 교수는 1937년 10월생으로 올해 만 82세다. 이 세대가 모두 그렇듯 그 역시 해방 전후의 혼란, 한국 전쟁 등을 몸소 겪고 견뎌냈다. 특히 그가 들려준 6.25 체험담은 너무 생생해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한국전이 발발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열두 살, 중학교에 갓 입학해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난리가 터진 것이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갑작스레 용인까지 피난을 떠났지만 당장 먹고 살길이 난감했어요. 어머니로부터 서울 도림동집에 쓸 만한 옷가지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남인 제가 10살, 8살짜리 동생을 데리고 용인에서 도림동 집까지 대 여섯 번을 오가며 옷가지들을 가져왔어요.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였는데 무서운 줄도 몰랐어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아직도 믿겨지지 않아요.”
그가 한번 집을 왔다갔다 하는 데는 꼬박 이틀을 걸어야 했다. 어머니는 그 옷을 여기저기 다니며 보리나 밀 등으로 바꿔 유 교수의 형제들을 3개월 동안 먹여 살렸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감내해야 할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5살 밖에 안 된 어린 동생을 전쟁 중 병으로 잃는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어려운 살림을 돕기 위해 미군 공병대에서 하우스보이를 하며 돈도 벌었다. 그는 부산을 거쳐 제주까지 피난가서야 가까스로 중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인생의 전기가 찾아온 것은 1960년대 초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리서치 어시스턴트로 일할 때다. 당시 한국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처음으로 인구조사를 기획했는데 그가 서울대 학생들과 함께 경기도 고양군 전수 조사를 지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때 미국에서 인구조사 관련 어드바이저로 나온 펜실베니아대(유펜)의 한 교수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 본 교수는 “우리 대학에서 공부할 생각이 있다면 모든 수속을 준비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교수의 도움으로 그는 1963년 꿈에 그리던 미국 땅에 도착했다. 유펜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울 즈음 지원서도 내지 않았던 칼스테이트 LA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교수직을 제의해 그는 남가주에 둥지를 틀게 됐다.
사회학과 인구통계학을 전공한 만큼 학교에 부임한 이후 그의 리서치 우선순위 1위는 미주 한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미주 최대 한인 밀집지라는 남가주 조차 인구, 거주지역, 직업 등 제대로 된 정보나 자료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이민법 개정과 함께 한인들의 가족이민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유학생이 대부분이던 한인사회가 가족 단위 이민이 늘어나며 일대 전환기를 맞았어요. 자연스럽게 한인단체들과 소통하며 커뮤니티에 발을 내딛게 됐지요.”
유 교수는 칼스테이트 LA에 한국학 연구소를 만들어 한인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조사에 돌입했고 미주한국일보, 한인단체 등과 수많은 서베이를 진행했다. 유 전 교수만큼 커뮤니티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학자가 별로 없었던 만큼 그의 서베이는 다방면에서 큰 역할을 했다. 10년마다 실시되는 연방센서스 외에는 한인에 관한 통계가 거의 없던 시절, 한인 경제 규모와 가정문제, 청소년 문제 등 한인사회의 주요 이슈를 숫자로 잡아내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성과.
그는 오랜 기간 수많은 서베이와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보람이 컸던 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한인사회 실체를 ‘김씨 성’ 표본을 통해 파악한 것이다. 1960년대 초 한국 고양군 인구조사를 통해 ‘김씨가 한국인의 22.5%’ 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이론을 미주 한인 인구 조사에도 적용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 그가 집계한 미주 한인인구는 연방센서스 결과와 거의 차이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다. ‘김 샘플 메소드’(Kim Sample Method)로 명명된 이 통계학 방법론은 후배 교수 한사람과 공동저자로 학술지 ‘데모그라피’를 통해 처음 미국학계에 소개됐다. 또 하나는 1970년대 초 그의 첫 한인연구 조사의 결실인 ‘미국 속 한인들’이란 책의 출간이다. 변변한 한인 자료가 거의 전무하던 시절, 한인들의 현 주소를 찾아내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값진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10년 전 쯤 40년간의 대학 강의실을 떠나 공식적으로 리타이어했지만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낸다. 재미 한인 조사를 통해 얻은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은 곳에서 부르면 어디든 달려간다. 또 4년 전부터는 좋아하던 영미문학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 서울대 출신 영미문학 동호회인 낙산회에 참여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자서전 집필이다.
“얼마 전 교회에서 한인사회에서의 교회의 역할에 대한 세미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이런 저런 자료를 찾다보니 바로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참에 지나온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그동안 연구를 위해 모아놓은 자료들도 정리하고 싶어 아예 자서전을 쓰기로 했지요.”
그는 한인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오랜 기간 지켜 본 산 증인인 만큼 한인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인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와 미래를 위한 방향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1970~80년대만 해도 많은 한인들 사이에서 돈 많이 벌고 자녀 좋은 학교만 보내면 그만이라는 방관자적 의식이 팽배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민 1세기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더 이상 생존을 염려해야 할 때가 아닌 만큼 한인들은 이제 개방적 사고를 통해 미국사회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인사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주 낙관했다. “한인들은 그동안 목소리를 대변해 줄 만한 정치적 인물도 마땅히 없어 사회적으로 소외돼 온 것도 사실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미국 제2의 도시 LA에 시의원을 두 명이나 배출할 만큼 크게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에서 교육받은 2, 3세 이후의 세대들은 미국 사회를 완벽히 이해하고 언어장벽도 없어 앞으로 20~30년 이내에 주류 정치계와 공직사회를 빠르게 장악해 나갈 것임을 확신합니다.’
유의영 전 교수 약력 ▲1937년 서울 출생
▲1961년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졸업
▲1963년 유학차 도미
▲1969년 펜실베니아대 사회학 박사
▲1968년 칼스테이트 LA 교수 및 동대학 부설 한국학연구소장
▲1970년-78년 서울대 인구 및 발전문제 연구소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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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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