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작가 오웰의 ‘비관적 미디어관’에 맞서 1984년 첫날 뉴욕~파리 위성으로 연결
▶ 세계 최고의 음악·예술가 합동공연 열어 인류화합·평화매개자로 미디어 역할 예견
백남준의 1995년작 ‘위성(Satellite)’은 위성을 통해 고층빌딩 솟은 뉴욕과 에펠탑 서 있는 파리 등 전 지구를 연결하고자 하는‘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정신을 담고 있다. [사진제공=박영덕화랑]
백남준의 1984년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 중 로리 앤더슨의 왼쪽 눈동자에 앤더슨 자신의 얼굴이 겹쳐지는 장면. 여기서‘눈’은 조지 오웰의‘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를 암시한다. [서울경제DB]
(4)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마침내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가 열렸다. 백남준이 ‘천재’ 소리를 듣는 이유 중 하나는 3G, 4G는커녕 그런 개념조차 없던 ‘0G시대’를 살면서도 통신 기술력이 물리적 시공간의 개념을 허물어 버리는 초연결사회를 구상했고, 작품으로 실현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작이 바로 ‘위성예술 3부작’이다. 백남준은 ‘우주 오페라’라 불렀던 3편의 인공위성 프로젝트다.
1984년 새해는 재야의 종소리가 아니라 백남준의 인공위성 쇼로 문을 열었다. 이는 한 해의 시작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고 21세기의 예고편이었다. 지금이야 통신기술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즉시 공유할 수 있고, 스타들이 실시간 개인방송을 하며 세계 각지의 팬들과 교류하는 게 흔해졌지만 35년 전 만 해도 그것은 공상과학의 판타지에 불과했다.
백남준이 처음 지구 반대편의 동서양을 연결해 보고자 한 것은 훨씬 더 앞선 1960년대 초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중국 상하이에서 동시에 연주하는 피아노 공연을 구상했다.
피아노 하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또 하나는 상하이에 두고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 수록된 푸가를 동시에 연주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리니치 천문대 표준시간으로 시간대를 맞추고, 메트로놈 템포 80으로 연주하자는 식으로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텔레비전 중계를 위해 미국과 유럽을 잇는 통신위성이 겨우 1962년 6월에 개통했으니, 그저 터무니없는 꿈이었다.
20년쯤 지나 그 생각이 또 떠올랐다. 백남준이 1990년 ‘보이스 복스(Beuys Vox)’ 전시 때 적은 글에 따르면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1980년에 독일 베를린의 르네블록 화랑에 갔다가 넘어지면서 불현듯 떠오른 것이라고 한다. 그 꽈당하는 순간 백남준은 “요셉 보이스와 대서양을 넘은 인공위성 듀엣을 하면서 1982년 휘트니미술관 전시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착상이 실제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의 상황은 신문기자 출신의 미술평론가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가 상세하게 정리해 저서 ‘백남준’(1992년·삼성출판사 펴냄)에 기록했다. 위성예술의 계획은 처음에 쾰른방송국(WDR)과 추진돼 예산확보로 이어졌으나 그 소식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지에 보도되는 바람에 돈줄이 끊겨 무기한 연기됐다.
하지만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이 ‘빅브라더’가 감시하는 전체주의적 미래사회의 암울함을 예견한 소설 ‘1984’의 해가 다가오자 백남준은 다급해졌다. 오웰은 텔레비전을 통제수단으로 묘사했지만 백남준은 즐거움을 공유하고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극복하게 할 평화의 매개자로 봤다. 오웰, 당신이 걱정하던 것과는 딴판으로 우리는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뜻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well)’. 1984년이 지나버리면 텔레비전으로 선보일 이 ‘우주 오페라’의 의미가 퇴색할 것이라 판단한 그는 어떻게든 해보리라 결심했다.
1984년 1월 1일에,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뉴욕의 방송사 WNET스튜디오를 연결하기로 했다.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줄지, 시나리오는 일찌감치 준비됐다. 문제는 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은 돈 만드는 일이 아니라 돈 쓰는 작업이다. 예산 16만 달러를 백남준은 스스로 조달하기로 마음먹었다. 백남준은 만석꾼 갑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돈은 물쓰듯 해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처럼 평생 펑펑 돈을 쓰기만 한데다, 부친이 재산을 몰수당한 뒤로는 자금줄이 바싹 말라 있었다. 작품을 만들어 ‘팔아야’ 했다. 판화를 찍었다. 총 250장의 판화와 AP(아티스트 프린트) 49장을 합쳐 299장의 판화를 제작했다. 이를 스위스의 프라비아나 갤러리, 파리의 에릭 파브르 갤러리, 밀리노의 지노 디 마조, 동경의 와타리, 쾰른의 르비트너, 그리고 서울의 현대화랑에 나눠 판매했다.
한국에서 정기용 원화랑 대표가 소식을 듣자 작가를 돕기 위해 2만 달러 어치를 단번에 구입했다. 백남준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당시 뉴욕 주재 한국문화원의 해외공보관이자 현대미술 전문가였던 천호선 씨가 한국의 방송사와 백남준 사이에 다리를 놓았고 KBS가 1만8,000달러에 방영권을 사갈 수 있도록 도왔다. 한국 정부에서도 VCR권을 4,500불을 구입했으니, 고국에서도 종자돈을 모아 준 셈이다. 방송경비가 총 40만 달러 이상이었는데 17만 달러는 미국 측이 마련했다. 부족분은 존 케이지·요셉 보이스·머스 커닝엄 등의 동료들이 판화를 찍어줘 돈을 보탰다.
1984년이 밝았다. 뉴욕은 1월1일 정오, 파리는 오후 9시, 샌프란시스코는 오전 9시, 서울은 2일 새벽 1시에 쇼가 시작됐다.
빨간 픽셀이 그려낸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씰룩이며 “굿모닝 미스터 오웰” “봉주르 무슈 오웰”을 읊조린다. 미래적인 느낌의 기계음 목소리다. 새벽에 이 장면을 본 한국의 시청자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본격적인 쇼는 피터 가브리엘과 로리 앤더슨이 듀엣곡으로 부른 ‘이것이 그 모습이다(This is the Picture)’의 뮤직비디오로 시작했다. 각자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하던 두 사람이 처음 협업한 것으로 여느 뮤직비디오와는 달리 시적이고 철학적이었다. 명장면은 클로즈업된 앤더슨의 왼쪽 눈동자 안에 그녀 자신의 얼굴이 합성되는 장면. 오웰의 소설 속 ‘빅브라더’를 연상시키는 ‘눈’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쇼의 사회자들이 등장했다. 뉴욕에는 조지 플림턴, 파리에는 클로드 비에가 있었다. 이들은 새해 인사를 주고받은 후 오웰과 백남준이 갖는 의미를 소개했다. 그리고 샴페인을 터뜨렸다. 동시에 잔을 들어 올린 두 사람은 대서양을 가로질러 건배했다. 공간적 거리감을 무색하게 하고 시간적 동시성을 이뤄낸, 시공의 격차를 극복했다는 상징적 축배였다.
이들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수 사포를 불러냈다. 그는 알렉산더 칼더의 대형 조각이 전시된 퐁피두센터 지하 광장에서 “빅브라더는 당신을 보고 있지 않아요. 다만 텔레비전이 우리의 생각을 삼켜버리죠”라며 노래했다. 공연 시작 부분에서 몇 차례 암전과 영상정지가 있었고 그때마다 스탠바이(Please Stand By) 자막이 등장하기도 했다. 방송사고는 아니었다. 당시 서울에서 KBS 문화부장으로 생중계를 책임진 이태행 백남준문화재단 상임이사는 “전파가 끊겼다가 다시 연결되기를 반복할 때면 나는 준비해둔 ‘스탠바이’ 화면을 집어 넣었다”면서 “미디어의 불통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블랭크를 만들고 전파 노이즈를 방송하는 작가의 뜻을 모른 채 나는 위성중계가 고르지 않다는 자막을 넣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쓴웃음만 날 따름”이라고 회고했다.
미국의 비디오아티스트 테디 디블이 화면을 꽉 채우고 앉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자연스럽게 하라”는 지시를 따르는 장면은 빅브라더를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어려운(?) 예술로 여겨지는 ‘굿모닝 미스터오웰’은 의외로 친근하고 재미있으며 자주 웃게 한다. 대서양 횡단 포럼이라 소개된 ‘지성인의 행진’이 그랬다. 화면 왼쪽에는 성조기 앞에 서 있는 뉴욕의 미첼 크리그만, 오른쪽에는 파리의 레슬러 풀러가 자리 잡았다. 철학자 미셸 푸코와 수잔 손탁을 대신해서 출연했다는 이들은 사실 코미디언들이며 실제 연인 사이였다. 이들은 텔레비전을 통한 인류의 친밀감 파괴라는 묵직한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지만 이내 통신이 고르지 않아 당황한다. 방송이 중단됐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 사적인 얘기를 하다 조미료 성분인 MSG까지 언급하며 투닥거린다. MSG는 화학물질인 동시에 메세지의 약자다. 쌍방향 소통과 대화식의 위성예술을 추구한 백남준의 바람이 엿보인다.
방송이 끝나자 백남준은 “인공위성에게 감사한다”라고 거듭 말했다. 그 인공위성은 ‘브라이트 스타(Bright Star)’라는 새벽별 같은 이름을 가졌다. 딱딱하고 차가운 산업사회에 기술력이 오히려 낭만과 소통을 되살려 줄 것이라 기대한 백남준의 낭만주의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이름이다. 방송 후 백남준은 편집버전을 만들어 VHS테이프로 간직했다.
물론 지금은 비디오재생기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만큼 백남준이 앞서 갔다는 뜻이다. 예언자 백남준이 지금 살았더라면, 과연 무슨 꿈을 꾸고 어떤 깜짝 놀랄 일을 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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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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