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경제보복 감정대응 한미일 공조 흔들...러시아 영공침범·북한 미사일 발사엔 침묵
▶ “안보·경제위기 맞서 전략적 모호성 탈피를”

여야 5당 사무총장들이 29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서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 대응을 위한 초당적 비상협력기구 구성 실무협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29일부터 내달 2일까지 예정된 여름 휴가를 갑자기 취소해 일본의 경제 보복 등 산적한 현안들을 챙기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대신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서 휴식을 취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제주 방문에는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손자 등이 동행했다. 청와대는 사전에 문 대통령의 제주 방문 사실을 공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옅은 하늘색 셔츠 차림으로 제주의 한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주민들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제주도 소상공인경영지원센터는 SNS에 문 대통령이 식당을 방문한 사진을 싣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이번에 취임 후 처음으로 공식 휴가를 취소한 것은 초유의 다층적 안보·경제 위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한 데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우대 국가)’에서 제외하는 추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 23일 러시아 군용기는 독도 인근의 우리나라 영공을 침범했고, 중국 폭격기는 동해의 한국 방공식별구역을 무단 진입했다.
북한은 지난 25일 새벽 원산에서 동해를 향해 사거리 600km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그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미 연합훈련과 한국의 첨단 무기 도입을 겨냥해 “남조선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 시위”라고 밝히면서 문 대통령을 향해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라”고 위협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에 대한 경고가 아니어서 전혀 염려하지 않는다”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게다가 중국과 한국 등을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개도국 지위를 상실하면 농수산물 분야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반도 주변에서 강대국들과 북한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피아를 구별하기 어렵게 됐다. 소용돌이치는 무질서의 동북아 정세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해 우리는 힘을 키우면서 복합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만 염두에 두고 지나치게 이념적 접근을 하는 바람에 북한·중국·러시아의 도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이 유엔이 금지한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했는데도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지 않았고, 대응 발언도 전혀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해서도 7일째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서는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을 경고한다”고 말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은 ‘전략적 모호성’에 기초한 외교안보 전략의 부작용을 되짚어보고 정책 대전환을 시도해야 할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우선 북한과 러시아의 도발에 대해 침묵을 거두고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북한에 올인하면서 한반도 운전자론에 매달렸던 전략이 패착으로 드러났고, 당당한 4강 외교를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러시아의 영공 침범에 대해 유엔 규탄 결의안까지 채택해야 하는데 우리가 미적지근하게 대응했다”면서 “우리의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고 주변국 도발에 대해 단호히 대응해야 한국을 함부로 건드리면 자신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략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고슴도치 결기 외교’라고 표현했다. 다수의 안보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에서는 반일 감정을 부추기기보다는 관계 회복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치중하면서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미일 안보 공조체제를 복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가운데 28일 자유한국당 북핵특위·외교안보위 연석회의에서 황교안 대표는 “문 대통령과 이 정권은 명백한 북한 도발과 위협에 침묵하고 있다”면서 “북한 규탄 성명 하나 내놓지 않은 정권이 과연 정상적인 안보 정권인가”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안보의 가장 큰 위협 요소”라면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 포기 결단을 내렸다고 했는데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당 황 대표를 향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황 대표가 대전시당 당원교육 행사에서 ‘우리가 이겨야 할 상대는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라고 강조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나 원내대표를 겨냥해 “국군통수권자에게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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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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