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영화계 사람이 아니어도 익히 알만큼 유명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았다. 평소 한국영화는 대부분 단편 드라마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굳이 영화관에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망설였지만 친구의 등 떠밂과 주말의 여유로움에 발걸음은 어느새 까맣고 널찍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의자
들이 듬성듬성한 영화관 안으로 향했다.
블랙 서스펜스 영화답게 익살스런 대화로 흥미를 자아내다가 흥분을 급상승 시키는 강한 액션이 관중을 압도하더니 영화의 끝말은 나뿐 아닌 여러 사람들에게 여운을 남긴 듯 했다.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간혹 동행인을 쳐다보며 씁쓸한 동의를 구하는 미소를 짓는 듯 했다.
영화는 한국의 돈 많고 잘 사는 상류층 가족과 반 지하에 사는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었다. 설정이 너무 극적이고 심하게 과장 되어있다고 느껴졌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이는 우리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절감케 했다.
내가 자랐던 80년대와 90년대 대한민국 가족들의 민심과 인생의 목표는 비슷했다. 돈을 많이 벌자는 목표보다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이번 세대보다는 다음 세대가 더 윤택한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 아이들 교육에 힘써 나보다 더 많은 기회를 주자는 정
도의 가치관이었다.
당시에도 부유한 상류층이 존재했지만 여전히 깔려있는 유교사상의 영향인지 겸손과 수수함이 미덕으로 꼽혔다. 그래서 있어도 없는 척하는 경우가 많았다. 번쩍 번쩍하게 눈에 띄는 화려함을 내세우지 않았다.
외제차가 길에서 보일 때면 모두가 손가락으로 가리킬 정도로 흔치 않았다. 대부분 가난하던 시절이니 빈부의 격차가 그다지 확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의 가치관과 목표는 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YOLO(You Only Live Once: 한 번 사는 삶 최대한 즐기며 살자) 란 신조어도 탄생하고 다음 세대보다는 현 세대의 행복 추구가 우선시 되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돈을 버는 과정 보다는 결과가 중시된다. 토지 보상금으로 돈을 번 벼락부자, 스타트업에 성공한 신흥 부자, 로또 부자, 유산을 물려받은 ‘원래’ 부자로 어떻게든 돈을 벌어 부자가 되면 된다는 풍조이다. 매사가 돈에 휘둘리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지난 세대가 자녀들에게 선사하고 싶어 한 ‘윤택한’ 미래는 돈과 행복의 일직선 비례 그래프로 정리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접근하기 힘들었던 정보는 인터넷의 발달과 빠른 이동 속도로 넘치게 얻을 수가 있다. 돈만 있으면 유럽의 어느 갑부 못지않게 호화찬란하게 꾸미고 살 수 있고, 외국생활 경험이 있는 부유한 젊은 층은 우아한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을 즐긴다. 이들로 인해 빈부의 격차는 외견상으로도 더욱 확고해졌다.
요즘 심심치 않게 나오는 뉴스가 어느 회사 사장이 손아래 직원을, 어느 사모님이 가정부를, 더 나아가 어느 부잣집 어린아이가 기사아저씨를 상대로 한다는 ‘갑질’이다.
극도의 자본주의 세태가 낳은 부조리라는 점에서 참 안타깝다. 우리 사회의 이런 단면들을 스크린을 통해 다시 한번 바라보는 기회가 되어 씁쓸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이다. 예로부터 윗사람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아랫사람을 아낌없이 돌보는 미덕이 있어왔다. 이런 가치관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잣대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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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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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 옛날이야기...동방예의지국...
변해도 너무 많이 빨리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하는 변한 지구촌 미국 사람들...거기에 부채질하는 트럼프같은 아베같은 정치인 TV뉴스를 보다보면 내귀를 의심 할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