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기관 수장과 여당 총선 전략·공천 주도자의 만남에 여야 정치권 공방
▶ 양 원장“지인들과 사적 만남”…야당 “국정원 중립 훼손, 진상 조사해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후 자신과 서훈 국정원장이 독대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이 지난주 4시간여 동안 비공개 만찬 회동을 가진 것으로 27일 확인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의원 총선을 10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과 여당의 총선 전략 기획 및 공천 작업을 주도하는 싱크탱크 책임자가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회동 사실이 인터넷매체에 보도되자 양 원장은 “지인들과 함께한 사적 모임”이라며 선을 그었다. 야당은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 약속을 어긴 것”이라며 국회 정보위 소집 등을 통해 진상 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인터넷 매체 ‘더팩트’는 서 원장과 양 원장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4시간 이상 만났다고 이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양 원장은 여의도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후 6시 20분쯤 이 식당에 도착했고, 오후 10시 45분쯤 서 원장과 함께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이 목격됐다. ‘더팩트’가 공개한 동영상에는 두 사람이 식당에서 나와 잠깐 얘기를 나눈 뒤 양 원장이 차를 타는 서 원장을 배웅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서 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을 맡은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싱크탱크였던 ‘국민성장’에서 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하는 등 양 원장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왔다.
양 원장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당일 만찬은 독대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과 함께 한 만찬”이라며 “사적인 지인 모임이어서 특별히 민감한 이야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양 원장은 “서 원장께 모처럼 문자로 귀국 인사를 했고, 서 원장이 원래 잡혀 있었고 저도 잘 아는 일행과 모임에 같이 가자고 해 잡힌 약속”이라고 말했다. 양 원장은 “당사에서부터 전철 한 시간, 식당 잠복 서너 시간을 몰래 따라다니며 뭘 알고자 한 것인가. 추구하고자 한 공적 이익은 무엇인가”라며 보도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기자 정신과 파파라치 황색 저널리즘은 다르다. 적당히 하면 좋겠다”고 신중한 보도를 요청했다.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정원은 선거에 개입할 수 없게 돼 있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만약 총선과 관련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민감한 정보가 모이는 국정원의 수장과 여당 싱크탱크 수장이 만난 것은 누가 봐도 부적절하다”며 “사적인 모임이라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무책임한 설명”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양 원장은 정보기관을 총선에 끌어들이려는 음습한 시도를 중단하고, 서 원장은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 ‘민주당 선거 도우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대통령 최측근과 국정원장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총선에서의 정치적 중립은 물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국회 정보위를 즉각 개최해 사실관계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 수 없지만 장시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서 원장과 양 원장의 만남을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기사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아 논평할 가치도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도 모른 채 부적절하다고 규정할 수 있느냐”며 “오히려 정보 수장은 누구든 만날 수 있고, 민주연구원장은 북한 정세나 남북관계 전망에 대해 의견을 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14일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양 원장은 지난 16일 국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20여 분 동안 독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본지의 자매지인 서울경제신문이 27일 여야의 전·현직 의원·당직자와 대학교수·정치평론가·현직 언론인 등 2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민주당의 총선 공천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인사로 이해찬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순으로 꼽혔다. ‘21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에서 실질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인사 두 사람을 꼽아 달라’고 질문한 결과 민주당 공천 영향력에선 14명이 꼽은 이해찬 대표가 1위를 기록했다. 이어 10명이 선택한 문재인 대통령과 9명이 꼽은 양정철 원장이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이낙연 총리와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각각 2명이었고,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 각각 1명이었다. 한국당의 공천 영향력에 대해선 응답자 20명 중 19명이 첫 번째로 황교안 대표의 영향력이 크다고 답변했다. 이어 나경원 원내대표와 한선교 사무총장을 선택한 응답자가 각각 8명, 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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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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