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실장·원내대표 “잠깐만 틈 주면 엉뚱한 짓”
▶ 야당 “남 탓만”… 관료“정책주도 靑이 책임전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0일 열린 당정청 민생현안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0일 회의 직전에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정부 관료들이 문제”라는 취지의 대화를 나눈 것이 공개돼 파문이 확산됐다. 관료들은 “정책을 주도한 청와대 등이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돌린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에 참석한 이 원내대표와 김 실장이 회의 시작에 앞서 사적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 내용은 방송사 마이크에 고스란히 녹음됐다.
이 원내대표가 먼저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라고 말했다. 이에 김 실장은 “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라고 답했다. 집권 4주년을 맞은 것처럼 공무원들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국토교통부 사례를 거론했다. 이 원내대표는 “단적으로 (최정호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가 지명됐다가 인사 검증 과정에서 낙마하기까지) 김현미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해…”라고 말하자 김 실장은 “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라고 거들었다. 김 실장의 발언은 버스 총파업이 예고되는 상황까지 진행될 동안 국토교통부 관료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이어 “잠깐만 틈을 주면 (관료들이) 엉뚱한 짓들을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뒤늦게 방송사 마이크가 켜져 있는 것을 알아채고 대화를 중단했다.
대화 내용이 알려지자 자유한국당 김현아 원내대변인은 12일 서면 논평에서 “김 정책실장과 이 원내대표의 밀담 내용을 보면 모든 것을 지난 정권과 야당 탓만 하더니 이제는 공무원 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잘못은 무조건 남 탓으로 돌리는 DNA를 가진 청와대에 스스로 돌아보는 반성의 DNA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경욱 대변인도 “청와대의 정책 수장 입에서 ‘집권 4년 차 같다’는 탄식이 흘러나온 것은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문재인정권이 벌써 레임덕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라며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청와대 고위 정책입안자들을 경질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직자는 개혁의 주체가 돼야지 대상이 되면 안 된다”면서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직자들이 2주년이 아니라 4주년 같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레임덕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여권은 그동안 주로 과거 정권과 야당을 국정 운영의 걸림돌로 지목해왔다. 최근 수출·성장률 추락 등에 대해선 ‘국제 경제 요인’ 탓으로 돌렸다. 이번엔 관료들을 겨냥하자 공직사회에선 “국정 실패가 결국 공무원 탓이냐”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요 부처 공무원들은 13일 “소득주도 성장, 탈(脫)원전, 4강 외교 실패, 버스 사태 등 문제점이 드러난 현안들은 모두 청와대와 여당이 주도했는데 왜 공무원 책임으로 돌리느냐”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간부들은 버스 파업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번 버스 사태의 원인은 청와대와 여당이 대통령 공약이란 이유로 주 52시간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버스업계 특례 조항까지 없앤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항변했다. 경제 부처 관계자는 “관료 사회에 자신의 업무가 언젠가 적폐청산이란 이름 아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늘 깔려 있다”면서 “잘못되면 당청이 책임을 져줄 건가”라고 반문했다.
발언 파장이 확산되자 이 원내대표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뒷담화를 한 것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의 얘기였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는 “(버스 대란 등에 대해) 답답한 심정이 와전돼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 발언은 집권 3년 차 들어 정부 정책이 속도감을 내기 위해선 관료 사회가 적극적 행정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격차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오차범위 안으로 좁혀졌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5월 7일부터 10일까지 유권자 2,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1.4%포인트 하락한 38.7%, 한국당 지지율은 1%포인트 상승한 34.3%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38.5%로 35.1%를 기록한 민주당을 모처럼 제쳐 눈길을 끌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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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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