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 방침을 공식화했으나 지원 타이밍을 놓고 고심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북한이 지난 4일 미사일 발사 도발을 한 데 이어 9일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또 쏘면서 국내외의 비판 여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번 발사는 한미 정상의 통화를 거친 뒤 통일부가 대북 식량 지원 방침을 공식화한 지 하루 만이다.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8일 대북 식량 지원과 관련, “구체적으로 통일부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준비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의 발언 이후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장관 대행은 상원 예산안 청문회에서 북한이 지난 4일 동해상으로 쏜 발사체에 대해 ‘로켓과 미사일’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9·19 남북 군사 합의 위반이므로 대북 제재를 완화하기 어렵다.
북한이 지난 4일 미사일 도발을 했음에도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북한에 쌀을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대북 식량 지원 방식과 규모에 대한 구체적 검토에 착수했다.
정부는 최소한 2017년 대북 지원을 하려다 유보된 남북협력기금 800만 달러로 구매할 수 있는 4,000톤 규모의 쌀을 지원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식량 부족량이 올해 136만톤에 이른다는 유엔 식량농업기구 등의 통계를 들어 지원 규모를 1만~10만톤으로 늘려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지원 방식으로는 국제기구 또는 정부 차원의 지원 등이 거론됐다.
정부가 대북 지원을 하려는 의도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고 남북 회담과 북미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을 하더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에 서둘러 쌀을 지원한다면 ‘미사일 도발에 쌀 보따리’라는 북한의 오판을 가져오는 나쁜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한의 전술에 따른 ‘도발-협상-보상’의 악순환 선례가 반복될 우려가 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따질 것은 따진 뒤 쌀 지원에 나서야 한다”면서 “북에 지원되는 쌀이 군사적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9일 오후 4시 29분과 4시 49분쯤 평안북도 구성 지역에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동해 방향으로 발사했다. 우리 군의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발사체 2발의 비행거리는 각각 420여km, 270여km”라고 설명했다. 닷새 만에 또 진행된 북한의 무력 시위는 대북 식량 지원을 둘러싼 국내외의 여론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발사체 발사 4시간여 뒤 진행된 취임 2주년 기념 KBS 특집 대담에서 “오늘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를 했다”면서 “비록 단거리라도 탄도 미사일이라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소지도 없지 않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식량 지원에 대해서 한미 간에 합의한 것이 발사 이전인데, 그 이후 또다시 발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선 국민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 사이에 충분히 논의도 필요하다”며 이 문제와 관련한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의 회동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비축하는 재고미가 국내 수요를 훨씬 넘어서서 해마다 보관 비용만 6천억원 정도 소요되는 실정”이라고 말해 대북 쌀 지원 의지를 갖고 야당을 설득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북미 협상에서 남측의 역할, 한미 군사훈련 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식량 지원보다 근본적인 문제 논의가 필요하다는 우회적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 의도를 분석하는 한편 국내 여론과 미국 반응 등을 주시하면서 대북 식량 지원 시점에 대해 신중히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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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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