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만에 합헌서 위헌… 임신 초기 낙태 허용될 듯
▶ “여성 자기결정권 인정”“생명보호 훼손”반응 갈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7년 전의 합헌 판단을 뒤집고 11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 조항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53년 제정된 낙태죄 규정을 66년 만에 손질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헌법재판소는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으로 결정했다.
자기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270조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동의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이 위헌”이라며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동의낙태죄 조항도 위헌”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다만 낙태를 전면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20년 12월 말까지 낙태죄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법 개정은 임신 후 일정 기간 내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맡겨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2017년 한 해 동안 이뤄진 낙태는 5만 건 가량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같은 낙태 추정치는 2010년 조사 때 16만8,738건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헌법재판소가 7년 전과 달리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사회 인식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7년 전인 2012년 헌재는 형법상 낙태 관련 처벌 조항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반대 의견도 4명이 나와 찬·반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
이번에 재판관들의 판단은 달랐다. 태아의 생명권이 무조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선시돼야 하는 게 아니라 임신 기간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의학계 의견을 근거로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임신 22주’ 내외로 봤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는 임신 22주 내외를 넘기지 않는 동시에 결정 가능 기간을 충분히 보장하는 선에서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이 중시돼야 한다는 의견이 채택된 셈이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0일 전국 성인 504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낙태죄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58.3%였다.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30.4%였다.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시민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한 시민단체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은 이날 헌재의 결정이 나오자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는 승리했다”고 외쳤다.
공동행동은 “헌재의 결정은 경제 개발과 인구 관리를 위해 생명을 선별하고 여성을 통제·대상화해온 지난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중대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헌재 앞에서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기 위해 모인 시민 100여명은 헌재 결정이 나오자 낙담한 표정으로 분통을 터뜨렸다.
개신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 79개로 구성된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은 “헌재 결정은 생명을 보호하는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판단”이라며 “낙태를 하면 아기가 죽는다는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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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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