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최근에 뜨거운 논란이 된 동영상이 있다. 지난 18일 링컨기념관 앞에서 낙태반대 집회를 하기 위해 모인 켄터키의 코빙턴 고등학교 남학생들과 미국원주민 인권운동가들의 충돌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영상 속에서 닉 샌드먼이라는 고등학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구호이기도 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문구가 새겨진 빨간 모자를 쓰고, 자신 앞에서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원로 원주민 인권운동가 네이선 필립스 씨를 미소를 띠며 내려다보고 있다.
그 학생의 미소는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동등한 인간이라고 본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표정이다. 표정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은 샌드먼의 주변에 있던 동료학생들의 행동이었다. 그들은 낄낄 거리면서 원주민 노래와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따라하는가 하면, 필립스 씨의 면전에다 셀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들이 쓰고 있던 모자나 이들이 외치던 “낙태에 반대한다”나 “벽을 짓자” 같은 구호는 변명의 여지없이 정치적이었다. 아무리 가톨릭 계열의 사립 고등학교라지만, 이렇게 학생들을 학업이나 진로와 무관한 정치적 시위에 동원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요즘 미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정치적 쟁점 속으로 이렇게 어린 학생들을 밀어 넣어도 되는 것인가?
더군다나 이들이 시위를 벌인 장소에는 입장이 다른 여러 단체들의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는 단체들 간의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사춘기의 흥분한 남학생들이 주변의 시위대들과 같이 폭주하고 있는 동안, 이들과 동행한 인솔교사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현장에 있던 한 시민이 공개한 다른 영상에서는, 학생들이 “너도 즐겼다면 강간이 아니다”라는 말을 던지면서 지나가는 여성들을 희롱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학교 측이 학생들의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언행을 조장하거나, 최소한 묵인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며칠 전에는 코빙턴 고등학교의 몇몇 백인학생들이 다른 학교와의 농구경기에 흑인 분장을 하고 나타나 상대편 흑인선수들을 조롱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일부 보수언론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현장에 있던 다른 단체가 먼저 학생들을 도발했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학생들은 전혀 잘못이 없다고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도발이 있었다고 해도, 학생들이 원주민들의 행동을 기분 나쁘게 따라하고 면전에서 “너희들이 땅을 뺏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따위의 말을 지껄인 행동은 없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 동영상 관련 논란들을 따라가면서,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이 아니라 코빙턴 고등학교와 미국 사립학교의 운영실태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어나길 기대했다. 학교는 개인의 재산이기 이전에 사회에 진출할 시민들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코빙턴 고등학교처럼 사립학교가 시민사회의 상식을 벗어난 인종차별적 태도를 조장하거나, 특정한 종교적 입장이나 정치적 이념의 도구로 학생들을 동원한다면 마땅한 제제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포트라이트는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어른들이나 학교가 아니라, 필립스 씨 앞에 서있던 고등학생들에게 집중되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가 한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것 같은 소년들이 전국 뉴스에 나와서 해명이라는 걸 하고 있다. 도대체 책임 있는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간 건가? 초점이 어긋나도 이렇게 어긋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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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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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학생탓 학교탓 하기전에 본인의 인식에는 문제가 없는지 반성해보는건 어떨까?
김성준이 넌 더 악질적인 성차별주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