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한 장의 사진
▶ 일제 밀정 총탄 맞고도 의연했던 백범 김구

백범 김구 선생(맨 오른쪽)이 1938년‘남목청사건’ 때 일제 밀정의 총탄을 맞고 수술을 받은 후 중국 장사 상아병원에서 의료진과 촬영한 기념사진. [연합]
1938년 백범 김구 선생이 일제 밀정이 쏜 총탄을 가슴에 맞고도 살아남아 의연하게 앉아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부산시립박물관은 올해 초에 기증받은 서영해(1902∼1949 실종) 선생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김구 선생 사진을 발견했다고 14일 밝혔다. 서영해 선생은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백범 사진은 서 선생이 생전에 수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진을 포함한 서 선생 유품 200여점은 부인 황순조 전 경남여고 교장이 보관하던 것으로 황 전 교장이1985년에 작고하면서 류영남 전 부산한글학회 회장이 보관하다가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오게 됐다.
사진 속 김구 선생은 상의를 풀어헤친 채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가슴 중앙에는 검은 점이 보이는데 이는 1938년‘ 남목청사건’ 때 일제 밀정의 총탄을 맞은 자국이다. 남목청사건은 1938년 5월7일 독립운동 세력의 3당 합당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연회에서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이 권총을 난사해 김구선생이 크게 다치고 현익철이 사망한 일을 말한다.
김구 선생은 총탄을 맞은 중태로 중국 장사 상아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나 훗날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되기에 이른다.
당시 피격 이후 김구 선생 모습은 백범일지 등 글로만 알려져 왔을 뿐 사진 자료는 공개된 적은 없었는데, 이번 사진이 발견되면서 사건의 진실이 확인된 것이다.
백범일지의 한 부분에는 당시 상황이 이렇게 설명돼 있다. “소생할 가망이 없어 보이자 의사들은 응급처치도 하지 않은 채 문간방에 놓아두고 장남 인과 안공근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쳤다. 그러나 4시간이 지나도 백범이 살아 있자 의사들이 백범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수술 후 한 달 여 치료끝에 촬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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