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위나라에 미하자라는 미소년이 있었다. 영공의 절대적 총애를 받던 미하자는 방약무도한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다. 어느 날 궁궐에 있는 그에게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영공의 명령을 사칭해 슬쩍 왕의 수레를 타고 대궐 문을 빠져나갔다. 법에 따르면 왕의 수레를 함부로 타는 사람은 발을 자르는 형벌을 받게 돼 있었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영공은 죄를 묻기보다 “효성스럽다”며 오히려 그를 칭찬했다.
또 어떤 날엔 영공과 함께 정원을 거닐던 미하자가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를 따서 먼저 한입을 베어 문 후 달다며 나머지를 영공에게 건넸다. 있을 수 없는 일로 신하들은 죄를 물을 것을 주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영공은 미하자를 두둔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죽이나 나를 사랑했으면 그 맛있는 복숭아를 내게 권했겠는가.”
하지만 외모와 감정은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법. 미하자의 외모가 전과 같지 않게 되자 왕의 총애도 식어갔다. 미하자는 점차 왕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으며 영공을 결국 그를 버렸다. 왕이 미하자에게 물은 죄는 지난날 자신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그 행동들이었다. 영공은 “이놈은 예전에 과인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타고, 또한 자기가 먹다 남긴 더러운 복숭아 반쪽을 함부로 내게 건넨 자”라고 꾸짖으며 그를 내쳤다.
이 이야기를 남긴 한비자는 “미하자의 행동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예전에는 임금의 칭찬을 크게 받았고 나중에는 벌을 받았다. 그 까닭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임금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행동을 놓고 사랑하는 마음이 들 때와 미운 생각이 들 때 보인 반응이 180도 달랐던 것이다.
최근 한 보수신문의 북한관련 보도논조에 비판과 조롱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떠올린 고사다. 이 신문은 박근혜 정부 시절 ‘통일은 대박’이라며 통일과 남북경협의 경제적 효과를 부각시키는 장밋빛 기사들을 줄줄이 내보냈다. “북 관광시설 4조 투자하면 연 40조 번다” “통일비용 겁내지만 혜택은 2배”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지면을 뒤덮었다. 예상치 못한 보수신문의 전향적 보도에 진보조차 놀랐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문재인 정부 들어서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해와 남북경협 분위기가 조성되자 이제는 여기에 시비를 걸고 찬물을 끼얹으려는듯 이전 논조와는 완전히 달라진 내용의 기사들을 싣고 있다. “통일은 이익보다 비용이 클 것” “통일에 부정적인 2030 세대” 같은 기사에서는 남북화해에 대한 못마땅함과 위기감이 드러난다.
왜 ‘통일 대박론’에서 ‘통일 쪽박론’으로 손바닥 뒤집듯 논조를 바꾼 것인지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지금의 정권이 맘에 들지 않고 밉기 때문이다. 이런 언론들에게 통일이나 남북화해는 정파를 초월해 다뤄야 할 이슈가 아니다. 그때그때의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바꿔도 되는 정략적 이슈일 뿐이다.
정권이 입맛에 맞느냐 아니냐에 따라 180도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많은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이다. 10여 년 전 한 신문이 소주매출 보도에서 보여줬던 교활한 논조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권이 마뜩치 않았던 이 신문은 소주매출이 줄어들자 “소주 사먹을 돈도 없을 정도로 서민들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다 소주매출이 늘어나자 이번에는 “서민들이 소주로 한숨을 달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관성 있는 논조의 신문이었다면 서민들 삶이 나아졌다고 보도했어야 옳았다. 의도에 끼워 맞춰 현상을 해석하는 나쁜 보도의 전형이다.
사안에 따라 언론 간에 입장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면 논조 또한 다른 게 당연하고 그 다름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언론이라면 어떤 스탠스를 취하든 최소한의 일관성은 가져야 한다. 대상과 상황에 따라 논조가 계속 바뀐다면 그것은 언론의 ‘자기부정’이 된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언론의 언어는 신뢰를 얻기 힘들 뿐 아니라 공허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
조윤성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4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말장난하네요 박근혜정부와 지금의 정부가 과연 북한을 같은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아닌가요
도약도 하기 전 추락한 언론이라는 날개 보수하려니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오백 년,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언론이 없다. 본래부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한국의 언론사들은 꽤 오래전부터 정권의 눈치를 보며 사실을 감추고 왜곡하는 방송국 및 신문사. 나라가 어떻게 망가져 나가든 오직 자신들의 이득만을 챙기려 소신도 사상도 버린 매판 언론사들만 판치고 있다. 그런대 한가지는 짚을 필요가 있다 박근혜식 통일은 자유 대한이 주도하여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 체제와 흡사한 통일이였다. 그런데 러시아 중국은 환영하나 미국이 염려하고 유럽이 걱정하는 문재인식 통일은? 현명한 독자들은 알고 계시리라.
먼저 조논설위원님의 해박한 지식과 혜안에 찬사를 보냄니다. 현재의 남북관계및 미북 등 국내외의 진행상황이 너무도 빨르게 진행되어 이러한 상황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국민들로써는 기쁘하면서도 혹시나 큰 차질이 있지않을가 하는 염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민주주주의의 꽃은 다양한 견해가 표출이 되고 이를 수렴함으로써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