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아파 카리프 후세인 기일, 고통 되새기며 결속력 다져

무슬림 시아파 여성들이 20일 아슈라 추모일을 맞아 이란 테헤란의 사다트 아크하비 사원에서 검을 옷을 입고 이맘 후세인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AP]
이슬람권의 주류 수니파와 소수 시아파 반목의 불씨가 된 시아파 카리프 이맘 후세인의 전사일인 ‘아슈라’를 맞은 20일 시아파의 맹주 이란은 검은 추도 물결에 휩싸였다.
이슬람권은 크게 주류 수니파와 소수인 시아파로 나뉜다.
두 종파는 이슬람이 탄생한 초기 7세기에 갈라졌다.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후계자(칼리프)를 지목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이 결과적으로 두 종파로 나뉘게 된 원인이 됐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4대 칼리프 알리까지는 예언자의 혈통으로 후계자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수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니더라도 합의로 칼리프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시아파는 반드시 예언자와 알리의 직계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의 갈등은 서기 680년 10월 지금의 이라크 중남부 카르발라에서 마치 영화처럼 폭발한다.
수니파 세력은 우마이야 왕조를 창건해 그 왕을 최고 종교지도자인 칼리프로 책봉했다. 반면 소수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이자 4대 칼리프 알리의 아들 후세인 이븐 알리를 따랐다.
우마이야 왕조의 야지드 1세는 아버지 무아위야에게서 680년 칼리프를 이어받은 뒤 후세인의 시아파 세력에 충성을 요구했다.
거대한 수니파 왕조와 대결을 앞두고 당시 시아파 내부에서는 주전론과 주화론이 충돌했다.
결국 후세인은 결사항전을 택하기로 하고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 왕조와 맞붙었으나 그의 곁엔 72명의 병사와 가족밖에 없었다.
현격한 군사력 차이로 단 2시간 만에 후세인은 수니파 군대에 처참하게 패한다.
카르발라 전투는 전투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일방적이고 순식간이었지만 수니파와 시아파가 돌이킬 수 없는 원한 관계가 된 결정적 장면이 됐다.
이맘 후세인의 전사일은 이슬람 역법(히즈라력)으로는 첫 번째 달(무하람)의 열번째 날이다.
이를 ‘아슈라’라고 부른다. 올해는 이달 20일에 아슈라를 맞았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에서는 무하람이 시작되면 아슈라까지 열흘간 일반 시민도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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