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시가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약 400명의 집시가 거주하고 있는 불법 집시촌 폐쇄를 단행했다. 로마 경찰은 26일 거주자들의 반발 속에 로마 북부 외곽에 위치한 난민촌 철거 작전을 감행했다.

ECHR은 지난 24일 이탈리아 당국에 철거 계획을 보류하고, 집시들의 이주 수용 계획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으나 로마 시는 위생과 건강 문제를 내세우며 폐쇄를 강행했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문제의 집시촌 일부는 전기와 수도도 설치되지 않은 곳"이라며 "이곳 주민들은 시에서 마련한 거처로 터전을 옮김으로써 더 큰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지 시장은 특히 폐쇄된 집시촌에 사는 미성년자들 상당수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곳의 생활 환경은 어린이들과 성인들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경 난민 정책 추진과 더불어 지난달 집시 인구 조사 계획을 밝혀 위법 논란을 빚기도 한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은 이날 철거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무엇보다 법과 질서가 존중돼야 한다"는 트윗을 올려 이번 조처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탈리아 우선'을 주장하는 극우정당 '동맹'의 대표이기도 한 살비니 장관은 집시가 노동보다는 범죄를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등 그동안 집시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내왔다.

그는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는 이탈리아에 체류하는 수십만 명의 불법 난민 추방과 함께 불법 집시 정착촌의 전면 철거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수년 동안 살아온 정든 터전에서 쫓겨난 집시들이 이날 경찰을 향해 '인종차별주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반발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일부 주민들은 경찰이 철거 과정에서 밀치고, 때리는 등 과도한 공권력을 사용했다고 항의했으나, 경찰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했다.

한편, 이탈리아 내의 집시 인구는 13만∼17만 명에 달하며, 이들 가운데 약 절반은 이탈리아 국적을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대부분 루마니아와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 발칸반도 출신인 이들은 대개 로마를 비롯한 대도시 외곽의 불법 정착촌에서 생활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