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료·후배·제자 문인들 빈소 조문, SNS에 애도 메시지
▶ “세속적 욕망 없이 고독한 길 걸은 진정한 예술가”
"작가로서 영향력이 컸지만, 문학권력이라고 할 만한 건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도 않고 오직 글만 쓰고 문학으로만 말한 분이에요. 정말 예술가죠."
23일 세상을 떠난 최인훈(1934∼) 작가를 추모하며 문학과지성사 공동창립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병익(80)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린 빈소에서 만난 김 평론가는 고인을 "유명 작가라면 사회적·세속적 지위를 욕망하기 마련인데, 그분은 그런 데 전혀 욕심이 없었고 오로지 글 읽기·쓰기에만 전념했다.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일 외에는 다른 사회활동이나 대외적인 활동을 전혀 안 했다. 타고난 작가이기도 하고 모든 걸 수렴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어디에 매이지 않는 자유지식인이었다. 읽고 사유하고 글로 쓰는 자유지식인의 전형을 보인 거다. 항상 사회와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신 분이고, 고전적인 작가적 태도를 가진 마지막 분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돌아봤다.
또 "그분이 감으로써 그분이 살던 시대도 함께 가고 있다고 봐야 할 거다. 한 시대가 가고 있다는 설움이랄까 그런 걸 느낀다. 어차피 시대는 변하니까 그분을 그리워하고 존경하고 사표를 삼을망정 따라 할 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광장'을 통해서 분단 현실을 제기하기도 하고, '회색인'을 통해 지식인의 고뇌를 드러내기도 하고 환상의 충돌로 내면적인 번뇌를 드러내기도 했으며, 서간 형식 등 비전통적·실험적인 수법으로 현실을 표현했다. 특히 '광장'을 기존의 한문 혼용 문체에서 한글 전용 문체로 바꿨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한때 동료 교수로 지낸 정현종(79) 시인은 빈소에 들리는 목탁 소리를 듣고 "고인도 승려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학교에 같이 있을 때 한 번은 같이 소풍을 갔다. 경기도 어디를 갔는데,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시냇물에 들어갔다. 그분이 평생 맨발로 시냇물에 들어온 적이 처음이라고 해서 놀랐다. 대단히 지적인 작가이면서 아주 아이처럼 순진하기 짝이 없는 분이었다"고 추억했다.
빈소를 찾은 후배 작가 이인성(65)은 "최인훈 선생님은 근대를 넘어서 동시대 현대소설이라는 것의 문을 처음 열어주신 분인 것 같다. 한국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신 분이다. 선생님 이전과 이후는 소설 쓰기 자체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주로 '광장'을 많이 얘기하는데, 나는 '회색인'이나 '서유기'를 읽으면서 쇼크받고 영감도 받았다. 이런 작품들에 대해서는 난해하다는 이유로 조명이 많이 안 된 듯한데, 전체적으로 한번 재조명이 되고 독자들이 읽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숙명여대 교수인 최시한(65) 작가 역시 "흔히 김승옥이 우리나라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매우 지적인 상상력을 보여준 분이 최인훈 선생님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상적이기까지 한 모던한 상상력을 잘 보여줬다. 우리가 소설이다, 문체다 생각하는 걸 혁신했고 완전히 다른 소설을 썼다. 나는 대학에서 문학개론 시간에 늘 '웃음소리'를 갖고 수업을 한다. 너무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작가로서 많이 읽고 깊이 사색해야 한다는 걸 아주 분명히 보여준 분이기도 하다"며 애도를 표했다.
서울예대 제자 강영숙(51) 작가는 "예술론을 주로 가르치시면서 늘 엄격하고 어려운 분이셨는데, 2015년 제자들이 팔순 행사를 열었을 때 인간적으로 대해주셔서 참 좋았다. 손을 잡아주시면서 글쓰는 일을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편하게 잘 쓰라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걸 쓰라고 하셨다. 그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거라 생각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 작가는 또 "'웃음소리' 같은 작품을 읽어보면 여성에 대해서도 세련되게 다루셨다. 여성을 굉장히 주체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시간이 지나고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어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역시 제자였던 윤성희(45) 작가도 "선생님께서 소설 강독 수업을 종종 했는데, 언어에 엄격하셨던 기억이 있다. 사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서울예대의 중심이셨고, 발자취를 잘 남겨주셔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교육이 되는 분이셨다"고 떠올렸다.
최근 고인이 오랫동안 몸담은 서울예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젊은 작가 정용준(37)은 "수능 세대로서 선생님 작품 '광장'을 교과서로 접하고 공부한 입장이다. 작가가 되면서 후배로서 더욱 뵙고 싶었고, 학교(서울예대)에 선생님이 쓰시던 방(연구실)이 아직 그대로 보존돼 있어서 종종 그곳에 가서 머물기도 했다. 언젠가 가까이 뵐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이렇게 떠나셔서 애석하다"고 아쉬워했다.
최인훈 작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문학평론가 우찬제(56)는 "좋은 작가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걸 하고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배들이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최인훈 선생은 작가로서 축복받은 사람에 속하고, 어떤 부분은 타고나기도 했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태어나고 남한에서 살게 된 것은 주어진 운명이지만, 그것을 문학으로 승화한 선택은 자기가 한 것"이라고 평했다.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영화감독 이창동이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공지영 작가도 트위터에 "분단을 그보다 더 지적이고 섬세하게 지적한 사람이 또 있었을까. 책갈피를 넘기며 생각들이 떡갈나무 이파리들처럼 펄럭이게 했던 선배님 고이 잠드소서. 남은 후배들이 통일의 문학을 할 수 있게 빌어주소서"라고 애도 메시지를 올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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