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냉전시대엔 뉴욕 시내에만 1만8,000개
오경보 사태로 미국 본토에서까지 냉전시대에 어느 곳에나 있었고 뉴욕 시내에만 1만 8000여곳이 있었던 방사능 대피소에 대한 관심과 현재의 무방비 사태에 대한 비판이 무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냉전시대의 미국민은 이번 처럼 경보가 울릴 때 대응하는 수칙을 잘 익히고 있었다. 어떤 건물이든 노란색 방사능 대피소 표지판이 붙은 장소로 대피해 몸을 숨기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건 전혀 대응책이 되지 못하거나,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당시 유물인 방사능 대피소와 낡은 노란색 (방사능표시 )표지판들은 지금도 수천 곳의 학교, 법원, 교회 등 공공시설에 남아있지만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 곳은 없다. 게다가 당시엔 막강한 핵국가 소련이 상대였는데 비해 지금은 어떤 깡패국가 한 곳 아니면 테러 단체들의 소규모 핵무기 공격일 것으로 생각해서 당시의 지혜와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많다.
컬럼비아 대학교 지구연구소의 국가재난준비센터 소장 어윈 레들너 박사는 "우리는 냉전시대 전설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2018년을 살고 있다. 50년 전에는 미소 핵경쟁으로 두 나라가 서로 핵무기를 겨누고 있어 자칫 전세계가 멸망할 위기감이 있었다. 지금의 핵 위협은 그 당시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라고 말했다.
지난 주 하와이에서 실수로 주민들의 휴대전화에 북한 미사일의 공격 사실을 알린 오보는 38분동안이나 취소되지 못하고 지속되었다. 하와이주는 북한이 하와이까지 사정거리가 가능해졌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북핵에 대비한 경보 시스템을 나름대로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운전자들은 고속도로에서 차를 버리고 터널 속으로 대피했고, 부모들은 욕조속에 아이들을 데리고 웅크렸다. 하와이 대학 학생들은 캠퍼스를 가로질러 힘껏 달려가 강의실 건물 안으로 피했다.
레들너 교수는 이같은 비상사태를 경험한 직후인 지금이 방사능 대피에 대해 논의하기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말한다. 평시에 사람들은 그런데 대해 전혀 이야기 하기 싫어하며 아예 거론도 안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와이 사건 이후 이번 주에 뉴욕 시민들에게 미사일 공격시 어떻게 대피할 것인지를 묻자 아무도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의 방사능 대피소 표지판은 지금의 방사선물질 경고판의 도안과 약간 다른 비슷한 금속판 표지였는데 1960년대 초 미소 핵무기 경쟁이 치열할 때에는 전국 도시 수 십만개의 빌딩안에 설치되어 있었다.
뉴욕 시내만도 1만 8,000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시 교육청은 지난 달 각급 학교에 있는 방사능 대피소 간판을 모두 철거한다고 발표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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