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20대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의 진로에 있다. 어디로 갈지, 무엇에 초점을 둘지, 어떻게 자신의 잠재력을 키울지를 고민한다.
학교에서 이론ㆍ공식ㆍ인물 등을 열심히 머릿속에 입력시켰지만 그런 지식은 자신의 진로 고민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높은 학점은 어깨만 으쓱거리게 만들어 현실감각을 잃게 만든다. 올A를 받았다고 사회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검증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남들보다 많은 지식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자아 성취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17세기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역설할 때는 지식을 향한 접근에 제한과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지식=힘> 이라는 공식이 통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주도하는 오늘날, 지식은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열린 도구가 되었다. 게다가, 사람의 두뇌에 바이오 칩을 넣어 인공지능과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을 연구, 개발 중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하지만, 생물학적 지능과 디지털 지능이 만난다면 지식이란 단어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10대, 20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식의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인터넷은 다가오는 눈 요기감을 아무리 클릭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생산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는 수 없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가능토록 만들었지만 그들과의 교류는 생산적 도움보다는 오히려 오해ㆍ편견ㆍ질투라는 부정적 감정을 불러왔다. 인터넷 덕분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는 것(지식)과 몸(행동)이 분리되었다.
지식이 진로의 방향타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보여줄 수 있을까.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일인칭 주인공은 이성과 논리로 점철된 지식인의 심볼이다. 책에 파묻힌 주인공은 다양한 사상과 이론에 빠져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비판하지만 자신이 나서서 변화를 불러오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인물이다. 이에 비해, 조르바의 지침돌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해서 얻어진 직접 경험이다.
“내 평생에 읽은 책이 딱 한 권 있는데 <신드바드의 모험>이요… 아니 당신이 읽는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가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있다면 대체 뭐라고 적혀 있는 거요?”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 눈으로 보이지 않는 벌레가 우글거린다고 합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요. 그런데 안마시면 목이 마르니. 확대경을 부숴버려요. 그럼 벌레도 안 보이고 물도 마실 수 있지 않소. 정신도 번쩍 들고요.”
조르바는 마치, 프랑스의 상황주의자 드보르가 말한 표류(dérive), 즉 지도나 정해진 목적지 없이 시내를 걸어 다니며 도시 속에 감추어진 신비를 찾아내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다. 조르바의 표류는 맹목적 배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외부의 규율이나 압력으로부터 해방된 자기주도적 학습자다. 소크라테스가 말한“네 자신을 알라”를 두고 고민하거나 의미를 찾지 않고 조르바는 행동으로 자신이 누구이며 왜 사는 지를 보여준다.
그의 사전에는“고민 좀 해보자”라는 구절이 없다. 만일 로스앤젤레스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자동차 경주가 열린다면 조르바는 브레이크를 풀고 시동을 걸 것이다. 그런 좌충우돌, 막무가내 경험주의자 조르바가 일을 할 때는 오로지 일에만 집중했다.
지식은 간단한 것을 복잡하고 헷갈리게 만든다. 그러나 조르바는 말한다.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
대니얼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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