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승 간사이 외국어대 국제정치학 교수
지난 22일 일본에서는 중의원 총선이 있었다. 결과는 집권 자민/공명 연합의 압승. 자민-공명 연합은 개헌선인 310석마저도 넘는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일본국민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사실 9월말 아베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했을 때도 의아해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국내외적으로 중의원을 해산해야 할 만큼 심각한 현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장고 끝에 악수를 두었다는 시각마저 있었다. 아베 총리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인한 지지율 하락세를 만회하고자 선제적으로 총선 실시를 결정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들이 조심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 것은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도쿄 도지사인 코이케 유리코가 추진하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지난 7월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압승한 이후, 고이케는 신당 창당을 추진해 왔고, 급기야 자신이 신당 대표를 맡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총선은 아베 대 고이케의 대결 구도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존 집권세력의 압승. 고이케 유리코가 급거 창당한 ‘희망의 당’은 총선 전 57개 의석에서 50석으로 주저앉았다.
이번 일본 총선 결과의 원인을 야권의 분열에서 찾는 시각이 대다수인 것 같다. 거대 집권세력을 상대로 단결해야 될 때에, 고이케 지사는 자신과 입장이 같은 정치인들만 선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 결과의 원인을 단지 야권의 전술적 실패에서만 찾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보다 심층적 원인이 있다. 일본의 야권은 여전히 2012년 일본 민주당 실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일본 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했다. 일본 전후 정치사상 최초로 자민당 이외의 정당이 단독 집권한 것이다. 당연히 국민적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민주당은 기존 일본 정치의 구태에서 탈피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재정을 실제 국민복지 위주로 재편하고, 불필요한 정부지출을 삭감, 세금도 감면하겠다고 했다. 미국 일변도 외교에서 탈각하겠다는 비전도 선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들은 실현되지 못했다. 정부지출 삭감은 바로 벽에 부딪혔다. 복지확대도 쉽지 않았다. 미국 편중 외교 탈각 시도는 미국 측으로부터 강한 역풍을 맞았다. 결국 사면초가에 몰린 하토야마 당시 총리는 취임 10개월도 안되어 사임했다. 후임 간 나오토 총리는 이듬해 발생한 후쿠시마 대지진 처리과정에서 우왕좌왕했다. 결국 14개월 만에 사임. 그 다음 노다 총리는 그 전의 자민당 체제와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지지율 하락세에 밀려 노다 총리는 2012년 12월 총선거를 실시했으나, 결과는 민주당의 대패. 아베 신조 중심의 자민당은 무려 176석을 늘리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2009년 일본국민들은 일본 민주당의 새로운 비전에 열광했으나, 민주당 집권 3년 동안 진보세력의 수권 능력에 실망했다. 그래서 2012년 그들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정감 있는, 기존 자민당 세력에 다시 표를 몰아준 것이다. 지난 22일 총선 결과는, 각종 부패 스캔들과 아베 총리 개인의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 지난 2012년 결정된 일본국민들의 안정 희구 선택이 여전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외교안보 측면에서 일본이 기존의 미일 동맹 이외에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볼 입지를 좁히고 있다. 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65세 이상인 일본의 초고령 사회는 연금구조에 충격을 가할만한 재정 개혁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베 총리 집권후 계속 중인 초 엔저 경제는 낮은 엔화 가치로 인해 수출과 관광수입을 늘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엔저 경제가 만들어 내는 일자리들의 달콤함은 고부가가치 경제구조 창출을 위해 필수적인 일본경제의 구조개혁을 지연시키고 있다. 일본국민들의 안정 희구 선택의 이면에는 변화와 개혁이 가져올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자민당의 압승으로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는 성급한 분석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일본 총선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그 방향이 무엇이든, 일본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든 경제든 앞으로 한동안 일본은 기존 방향을 유지한 채 조심스럽게 점진적 변화만을 탐색할 것이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 어느 방향이든 급격한 전환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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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승 간사이 외국어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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