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개발과 ICBM 미사일을 둘러싸고 시작된 미국과 북한 간의 ‘강 대 강’ 대결국면이 지난 주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에 이은 북한의 괌 공격 위협으로 최고조에 달하더니 이번 주 들어 숨고르기에 들어 간 모양새다.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으르렁’이 처음은 아니지만, 트럼프 발언에 북한이 ‘이에는 이’ 식으로 맞서면서 자칫 전쟁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고조됐다.
이런 대결 국면에 대해 우려와 함께 비판의 소리도 크게 터져 나왔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리엔 파네타는 두 사람을 “난폭한 발언으로 서로를 헐뜯는 불량배들”이라고 비난하며 이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사실 “전쟁 불사”는 국가책임자라면, 특히 세계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절제가 필요한 발언이다. 전쟁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가려진다 해도 피해는 예외 없이 쌍방 모두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 고통은 대부분 죄 없는 민간인들과 젊은이들의 몫이다. 북한의 지속적 위협에 시달려 온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 다수가 그럼에도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가정책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쟁에 대해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2년 전 연방의회에서 이슬람국가와의 전면전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참전경험이 있는 의원들일수록 한층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당시 연방의회의 참전용사 출신의원들은 총 26명이었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한 여성의원은 “국가지도자들이 과연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전쟁을 시작하는 건 쉽지만 이를 끝내는 건 어렵다”고 연설한 참전용사 출신 의원도 있었다.
전쟁을 겪어 본 정치인들은 전쟁을 선뜻 입에 올리지 않는다. 전쟁의 어리석음과 참화를 직접 겪고 목격했기 때문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연방의회 의원들 가운데 군복무 경험자가 많았던 시기일수록 미국이 평화로웠다는 실증연구도 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지는 분명하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경험해보지 못한 지도자들일수록 더욱 호전적 성향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을 지휘했던 아이젠아워 대통령은 베트남 내전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이슬람국가와의 전면전을 반대했던 연방하원의원처럼 ‘시작은 쉬워도 끝내기는 어려운’ 전쟁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후임 대통령들의 결정으로 베트남에 개입했으며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라크 전쟁 또한 군 경험이 전혀 없던 부시 행정부 내 강경 네오콘들의 주도로 시작됐다. 당시 군 수뇌부는 전쟁에 반대했다.
툭하면 전쟁을 입에 올리고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는 지도자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타인을 제압하거나 통제하는 궁극적인 힘은 오직 물리력뿐이라는 믿음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자신들은 정작 그런 물리력 행사의 도구가 되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참전은 물론 군 복무경험조차 없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만 봐도 병역을 회피한 인물들이 득실댄 정권일수록 전쟁 불사 구호가 더 난무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강 대 강’ 대립은 ‘치킨게임’이다. 자신의 유약함을 숨기고 필요 이상 센 척 보이려 겁쟁이들이 벌이는 게 치킨게임이다. 그러니 파국적 결과를 피하면서 치킨게임을 끝내려면 서로의 ‘남자다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위협을 거둘만한 적당한 명분을 주고받는 게 필요하다. 이것이 협상이고 외교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트럼프의 강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집단사고’(groupthink)의 덫에 걸린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협상카드의 유효성을 믿는 각료와 측근들이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결국 기댈 것은 이성의 힘뿐임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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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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