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이 결여된 성공
아이가 점차 자라서 어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진정한 징표는 육체적 성장이 아니다. 정신적 성숙이다. 아무리 몸이 자랐어도 정신세계가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다면 어른 대접 받기 힘들다. 아이들은 자기 밖에 모른다. 곧바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징징대고 칭얼거린다.
우리는 이런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어른을 매일 매일 지겹도록 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내내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거침없이 ‘패배자’(loser) ‘바보’(stupid) ‘실패자’(failure)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싸울 때 내뱉는 단어들이다. 차이를 인정하거나 논리로 다투는 게 아니라 맘에 안 드는 상대는 싸잡아 그냥 ‘나쁜 사람들’로 만들어 버린다.
트럼프의 유아적 정신상태는 병적인 인정욕구에서도 확인된다. 나르시시스트인 트럼프의 인정욕구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주 트럼프는 오하이오 한 집회에서 “링컨을 제외하면 백악관 집무실을 장악한 어느 대통령보다도 내가 더 잘하고 있다”고 자화자찬을 했다. 지지율 30%대인 대통령이 할 얘기는 아니다. 대통령이 됐으니 좀 나아지려나 싶었지만 역시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만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트윗으로 TV뉴스 앵커들과 치졸한 싸움을 벌이더니 요즘은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면서 불만을 터드리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 자기가 임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통령으로서의 위엄이나 체통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수선한 대통령 때문일까? 백악관도 완전 복마전 상태이다.
배경이 어두울수록 빛은 더 뚜렷이 드러나는 법. 요즘 존 매케인 연방상원의원은 트럼프와 대비되는 의연함과 품격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두 주전 뇌종양 수술을 받은 매케인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바마케어 폐지관련 표결에 참여해 연설을 했다. 그는 정치가 부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 후 “나 자신도 종종 ‘공공의 선’보다 ‘정치적 승리’를 우선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노정객의 충정어린 질타와 참회에 의사당 안은 숙연해졌다.
매케인은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패했다. 당시 그가 했던 패배시인 스피치는 명연설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매케인은 오바마에 축하를 보내면서 “그와 나는 의견이 달라 논쟁을 해왔고 견해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나는 그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헤치고 이끌 수 있도록 힘을 다해 도울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짧은 문장 속에 깨끗한 승복과 협치 등 성숙한 민주주의의 가치가 잘 녹아있다.
이런 의연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매케인은 1967년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5년 반 동안이나 모진 포로생활을 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고난과 고통의 시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외상 후 성장’의 가장 대표적 사례로 정신분석학자들이 꼽는 게 매케인이다.
흠투성이 성품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성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 인물들을 다룬 책 ‘인간의 품격’(The Road to Character)을 쓴 칼럼니스트 데이빗 브룩스는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성숙함은 사람들을 유명하게 만드는 성향들로 구축되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트럼프와 매케인을 비교하니 무슨 뜻인지 바로 와 닿는다. 유명하게 만드는 자질에서는 트럼프를 당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성숙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성숙함이 결여된 성공이 개인적 영역에 머물 때는 소수의 짜증지수를 높이는 정도에 그치지만, 공적 영역으로 넘어오는 순간 그것은 다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파괴적 요소가 된다. 권력 대리자를 고를 때 국민들이 보다 더 신중하고 현명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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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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