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국학은 어떻게 생겼어요?” 워싱턴 주립대학 (University of Washington)에 재학 중이던 2000년대 초, 재정난으로 폐지 위기를 맞고 있던 ‘한국학’ 살리기 서명운동에 자원봉사를 하던 중 “좋은 일 하시네요” 하며 흔쾌히 서명하고 돌아서던 한 중년 남성분이 나에게 물어온 질문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학 (Korean Studies)’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탓인지 한국학을 ‘한국 학(crane: 두루밋과의 새)’으로 오해하신 것이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던 나 자신 조차도 폐지 위기에 관한 기사를 보고서야 교내 한국학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일본학, 중국학의 ‘곁다리’, 또는 동아시아학의 작은 일부로 취급받아오던 한국학은 이제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체적 한국학 프로그램이나 연구센터를 두고 있는 미국 대학만 해도 2000년 이전 9개에서 현재 17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 정부가 국제교류재단(KF),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을 통해 한국학 활성화에 공을 쏟은 결실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십여년 간 지속되고 있는 북한 문제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민들의 남다른 조국사랑과 헌신 또한 미국 내 한국학 발전에 빼 놓을 수 없는 요인이었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대부분의 한인 1.5-2세들은 한국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지금과 같은 정보의 홍수나 한류의 영향도 없었을 뿐더러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코리안커뮤니티의 역할도 미미했다. 밤낮없이 휴일도 없이 사느라 바빴던 대부분의 당시 이민 1세대 부모님들에게 주말이면 자녀들을 한글학교에 보내고 이따금씩 한국에서의 추억이나 여담을 들려주는 것 이상의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민 역사가 깊어지면서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고 어느새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으로 자리 잡은 한인사회는 달라졌다. 잠시 묻어두었던 고국사랑은 여러 분야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역사왜곡으로 논란이 되었던 초·중학교 교재 ‘요코이야기’ 퇴출운동을 성공으로 이끈 것도, 소녀상 설립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미국사회에 알리기 시작한 것도, 한국학 프로그램들이 재정난으로 위기를 겪을 때마다 기금모금이나 서명운동 등으로 힘을 실은 것도 우리 교민들이었다.
더불어 미시간 대학에 400만달러를 기부하여 한국학연구소를 설립한 고 남상용 회장, 스탠포드 대학에 한국학 석좌교수기금 200만달러를 쾌척한 김종훈 사장, 소유하던 아파트 건물을 매각해 UCLA에 한국기독교 교수직과 연구기금을 만든 임동순씨 등 미국 내 한국학 발전에 큰 뜻을 두고 있는 한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미국 내 한국학의 초석을 마련한 1세대 한국학자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한인 2세 코리안아메리칸 학자들이 그 바톤을 이어받아 주요대학에서 한국학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또한 스탠포드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고교생 대상 온라인 한국학 강좌인 ‘Sejong Korean Scholars Program’ 등은 한인 2-3세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차세대 한국학 리더양성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1980년대의 일본열풍, 2000년대 이후의 중국열풍에 이어 이제는 미 전역에 부는 한국학 열풍을 기대해 봐도 좋을까? 올해 들어서만 벌써 두개의 한국학 연구소가 미 수도의 조지워싱턴대학과 한국학 불모지인 중남부의 미주리 대학에서 출범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더구나 많은 한국학 연구소들이 한국정부의 재정지원만 바라보던 기존방식을 넘어서 점차 주도적인 운영과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매우 긍정적인 변화이다.
한국학의 또 다른 도약을 위해선 한인사회의 관심과 후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경제력 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자본까지 두루 갖춘 성숙한 한인사회로 성장해가는 여정에 한국학의 발전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머지않은 한국학 전성시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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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리/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한국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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