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 날부터 사람 냄새 나는 친근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당연한 것임에도 그동안 대통령들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워낙 익숙해져 온 터라 생소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무튼 대통령과 국민들 간의 격의 없는 스킨십은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드는 기분 좋은 광경이다. “새 대통령이 취임 며칠 동안 보인 소통이 전임 대통령 4년간의 소통량보다 많은 것 같다”는 네티즌들의 평가는 이런 분위기를 대변해 준다.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내용의 대통령 취임사도 화제다. 해석하느라 머리가 아플만한 표현이 전혀 없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들에게 여러 약속을 했다. 선거 때 했던 공약의 성실한 실천을 다짐하면서 자신이 추구해 갈 가치에 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 드리겠다”고 한 발언이 특히 눈길을 끈다.
대통령 취임사는 대개 거창하고도 추상적인 수사로 가득 차는 게 보통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에서 “잘못을 하면 절대 숨기지 않겠다”는 식의 약속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정직한 정치를 하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일 것이다. 일단 새 대통령에게 신뢰감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정말 강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위다. 약하고 비겁한 사람들은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걸 자존심 문제로 여기고 심지어 자신의 존재기반을 무너뜨리는 일로 받아들인다. 위계와 서열이 지배하는 사회의 높은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군왕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 것이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은 규범적으로 올바른 일이다. 역사 앞에 범죄를 저지른 독일과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대하는 인식과 이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런 태도는 규범적으로 옳을 뿐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된다.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분석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요인은 실수와 관련한 경영자들의 태도이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이를 잘 극복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경영자가 이를 자기 책임으로 인정하는 회사들이라는 것이다. 위기극복을 위한 노력은 지도자의 책임 인정과 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
문 대통령은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말했다. 권력자는 자신이 실수하거나 잘못할 경우 이를 덮고 싶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권위가 손상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오래 권력에 취해 있다 보면 뇌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트럼프의 경우가 그렇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거짓 주장을 일삼고 사과라고는 모르는 트럼프에 대해 “자신은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무오류병’에 걸려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잘못을 덮게 위한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문 대통령 탄생을 가져온 국정농단 사태가 바로 그랬다.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 했다면 현재의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못을 깨끗이 시인하지 않고 거짓으로 여론을 호도하려다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이다.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인간은 없다. 논어는 “군자가 잘못을 범하는 것은 일식(日蝕) 월식(月蝕)과 같은 것으로,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단 잘못을 고쳤을 때 사람들이 존경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잘못을 고치려면 이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게 우선이 돼야 함은 당연하다.
지난 9년간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들을 마치 다른 사람 일인 양 말해온 청와대 주인들의 ‘유체이탈’ 화법에 국민들은 지쳐버렸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잘못했으면 머리 숙여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용기 있는 대통령을 보게 되었으면 한다. 물론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너무 자주 보는 일은 없어야 바람직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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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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