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W개발자-DVD 대여업-온라인 스트리밍 선구자
▶ ‘블록버스터’연체료에 불만… 인터넷+영화주문 착안 도전없는 성공 과감히 팽개치고‘최고기업’문화실천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가 지난해 1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박람회(CES)에서 한국을 포함, 전 세계 130여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1996년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리드 헤이스팅스(당시 36세)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비디오를 빌려본 뒤 제때 반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왜 비싼 연체료를 물어야 하느냐’는 거였다. 당시 그는 미국 최대 비디오 대여점‘블록버스터’에서 빌린 영화‘아폴로13’을 6주 늦게 반납해 40달러를 물어냈는데 집에서 먼 대여점까지 갔다와야 하는 데다 조금 늦었다고 연체료까지 내야 하는 게 억울했다
1996년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리드 헤이스팅스(당시 36세)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비디오를 빌려본 뒤 제때 반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왜 비싼 연체료를 물어야 하느냐’는 거였다. 당시 그는 미국 최대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에서 빌린 영화 ‘아폴로13’을 6주 늦게 반납해 40달러를 물어냈는데 집에서 먼 대여점까지 갔다와야 하는 데다 조금 늦었다고 연체료까지 내야 하는 게 억울했다.
그때 그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거실에서 원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하고 즉시 무료로 반납할 수 있는 서비스. 한 편을 다 보고 난 뒤 그 후속 편을 바로 이어 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당시만 해도 황당한 아이디어로 여겨졌지만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언젠가는 이를 가능하게 해 줄 것으로 봤다.
헤이스팅스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옛 직장 동료인 마크 랜돌프와 캘리포니아주 로스 가토스시에서 새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 이름은 인터넷을 뜻하는 ‘넷’과 영화주문을 일컫는 ‘플릭스’를 합쳐 ‘넷플릭스’라고 지었다. 말 그대로 인터넷에서 영화를 주문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올해 스무살이 된 넷플릭스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1997년 미국에서 DVD 배송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190여 개국에 진출해 있는 세계 최대 동영상 서비스 업체다. 모든 콘텐츠는 전 회차가 한꺼번에 공개되고, 영상의 앞뒤 중간 어디에도 광고가 붙지 않는다. 가입자는 곧 1억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615억달러 정도다.
■ 소프트웨어 개발자서 경영자가 되기까지
헤이스팅스는 1960년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1983년 보든대학에서 수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평화봉사단의 일원이 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2년 동안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쳤다. 다시 미국에 돌아와서는 스탠포드대에 진학, 1988년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헤이스팅스는 ‘아답티드 테크놀로지’라는 정보기술(IT) 회사에서 개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의 허점을 찾아내 고쳐주는 도구를 만드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가 재직하던 시절 회사 CEO는 미국을 대표하는 직업여성 50명 명단에도 오른 적이 있는 오드리 맥린이었는데, 헤이스팅스는 훗날 “그에게 두 가지 일을 어정쩡하게 하는 것보다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게 낫다는 집중의 가치를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헤이스팅스가 사업가로서 첫 발을 뗀 건 1991년 소프트웨어 기업 ‘퓨어 소프트웨어’를 설립하면서다. 그의 첫 회사는 초기부터 빠른 성장 속도를 보였다. 매출은 매년 2배씩 늘었고 직원 수도 10명에서 40명으로, 120명을 넘어 640명으로 불었다. 자연스럽게 설립자인 그의 역할은 개발자에서 경영자로 바뀌어 갔다.
하지만 회사가 승승장구 할수록 헤이스팅스는 회사를 이끄는 것이 자신의 능력 밖이란 생각이 커졌다. “그럴수록 도전하기보다 현재 잘 할 수 있는 일에만 매진했고 비판에는 귀를 닫았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감을 잃은 그는 두 번에 걸쳐 자신을 해고하려 했지만 번번이 이사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회사는 1995년 기업공개(IPO)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결국 헤이스팅스는 1997년 퓨어 소프트웨어를 래셔널 소프트웨어에 매각했다. 래셔널 소프트웨어는 헤이스팅스에게 최고 기술책임자(CTO)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합병 직후 회사를 떠났다. 헤이스팅스가 매각을 통해 손에 쥔 금액은 7억5,000만달러. 이는 이후 넷플릭스 설립에 종잣돈이 된다.
■ DVD 대여사가 세계 최대 동영상 업체로
1997년 넷플릭스를 설립한 그는 1998년 30명의 지원과 고작 925개의 DVD를 갖고 대여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업으로는 이미 시장을 장악한 블록버스터와 경쟁이 될 리 없었다.
이듬해 헤이스팅스는 실험에 나선다. 매달 일정 금액(5달러)을 내고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넷플리스가 보유한 DVD를 무제한 임대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연체료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블록버스터의 연체료 폭탄에 신물이 나있던 미국인들은 이 같은 서비스에 열광했고, 넷플릭스는 빠르게 가입자를 늘려 나갔다.
2000년 헤이스팅스는 경쟁사 블록버스터를 찾아가 넷플릭스 지분 49%를 인수하라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그는 2002년 보란 듯 넷플렉스 IPO에 성공했고, 2003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2007년 DVD 누적 주문 10억개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헤이스팅스는 오히려 그때부터 사업의 중심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최고만이 살아남는 넷플릭스 기업 문화
넷플릭스에 관한 책 ‘넷플릭스드’를 쓴 지나 키팅은 헤이스팅스를 “내가 만나 본 가장 이성적인 CEO”라며, “넷플릭스와 헤이스팅스는 떼려야 뗄 수 없고, 그의 성향은 넷플릭스에 점점 더 많이 투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직원 처우가 좋기로 손꼽히는 기업이다. 모든 직원이 억대 연봉을 받고, 근무시간 제한도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상사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바로 추진할 수 있고, 자기가 맡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언제든 휴가를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 직원들에겐 그만큼 엄격한 조건이 따른다. 근속 연수나 회사에 대한 충성심 따 따위 헤이스팅스의 관심사가 아니다. 만약 누군가 100%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80%의 성과를 냈다면 아쉽게도 그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 넷플릭스는 매년 전 직원의 성과를 평가해 하위 20%를 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퇴직금은 두둑이 챙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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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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