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광고 관련 일을 하던 친구가 십 수년전 이민을 와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뉴욕에서 액세서리 비즈니스를 하고있다. 작은 비즈니스지만 미국 기업들을 상대로 물건을 주문받고 납품하는데, 어떻게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느냐고 놀라는 내게 그가 오래 전 했던 말이 있다.
“전화로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직접 또 찾아갔지. 가면, 아니 금방 통화했는데 얘가 왜 왔지? 놀래지만, 얼굴을 보고 직접 얘기해야 더 정확하니까 어쩔 수 없어. 내가 급해서!”영어가 서툴어 스스로 답답하니 직접 클라이언트의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눴다는 그 성실함과 열정이 그녀의 사업을 꾸준히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었는지, 여전히 뉴욕, LA, 한국, 중국 등지를 오가며 일하고 있다.
사실 미국에 와서 두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전화 영어였다. 주문을 하거나, 공공서비스를 열거나, 배송이 잘못되어 따지거나 등등 많은 일들을 전화로 해야하는 데, 영어가 한국말처럼 매끄럽지 않은 한인 이민자들은 혹시 한마디라도 놓칠까, 뉘앙스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이 많다. 특히 전화로 컨퍼런스를 할때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회의내용을 알아듣고 의견을 내는 것이 거의 공포수준이었다.
이제는 전화로 따지거나 느긋하게 다시 말해달라고 하는 배짱도 생겼지만, 예전에는 ‘차라리 얼굴 보고 말하는게 낫다’고 전화용무를 되도록 피했었다. 친구와 나의 예를 보면, 사람과 사람의 일은 얼굴을 마주보고 눈빛을 교환하며 나눌 때 가장 확실하고 오해가 없다는 생각이다. 어떤 일이든 안 그렇겠나. 학교에서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 것도, 광고주 앞에서 사람이 직접 서서 프렌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아이와 마주 앉아 문제를 푸는 것도 모두가 얼굴을 대면하는 일이다.
왜 그럴까? 목소리, 표정, 태도, 눈빛이 함께 통합적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마음을 이해하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며 해결책을 모색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만 하게되면 거의 일방적인 전달이나 답변에 그치기 쉽다. 요새는 아기 유모차도 엄마 얼굴을 보며 밀 수 있는 형태가 나와 아기의 불안감을 줄여준다고 한다.
중요한 전략과 방안을 세워야 할 때는 팀원, 팀장, 결정권자 할것 없이 모두 모여 밤을 새워가며 아이디어를 짜고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모두의 열정이 들어간 내용과 위에서 통과받기 위해 만든 내용의 진정성, 내용의 수준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학교, 직장, 가정 어디에나 해당되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5,000만명을 대표하는 대장이 그들을 위해 만드는 정책, 아이디어, 실행들을 마주보고 고민하고 해결하려하지 않고 보고만 받았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아무리 스마트폰 인터넷 시대라지만, 심지어 페이스타임도 있는데, 얼굴 보고 토론하고 의논해야 하는 일들은 과연 어찌 처리했을까? 얼굴 보고 상대할 자신이 없었던 걸까? 일사천리로 진행할 만큼 일을 잘했을까? 아니면 한마디도 못하게 입을 막아버렸을까?답답한 한국정세를 보며,커뮤니케이션의 기초가 되는 얼굴 마주보기를 거부하는 그 이면이 정말로 궁금한 요즘이다.
<
유정민 카피라이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