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 정부 발간 150년 해외 이민사 자료집
▶ 본보 주관 행사 사진 실려 대표 기록물 평가

기록으로 보는 재외한인의 역사 자료집에 실린 1976년 LA 한인축제‘코리안 퍼레이드’의 모습. 당시 본보 주관으로 열렸던 코리안 퍼레이드는 주류사회에 한인사회의 위상을 과 시하고 한인들이 스스로의 파워를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연합>
한인들의 미국 이민이 본격화되기시작하던 1974년 11월3일 오후 3시, 당시 LA 한인 상가들이 밀집하기 시작해 한인타운의 중심으로부상하고 있던 올림픽가에서 LA한인사회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행사가 벌어진다.
바로 제1회 ‘코리안 퍼레이드’가 펼쳐진 것이다. 당시 코리아타운 번영회가 주최하고 한국일보가 주관한 이 퍼레이드는 무려 3만여명의 한인과 주민들이 나와 올림픽가를 따라 웨스턴에서 놀만디까지 이어진 행렬을지켜보며 미주 한인사회의 파워를 깨우쳤다.
이처럼 한인 이민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적 행사인 ‘코리안 퍼레이드’의 40년여전 당시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가 한국 정부가 발간한 한인 해외 이주 150년 역사 자료집에 대표적인 기록물로 실려 화제다.

국가기록원이 발간한 ‘기록으로 보는 재외한인의 역사’ 자료집. <연합>
한국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이같은 미주 한인사회의 이민 역사 및 피땀 어린 현지 정착 노력을포함해 해외 한인 이주 150년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진, 문서, 신문,서한, 등 기록 자료를 정리한 ‘기록으로 보는 재외한인의 역사' 자료집을 한국시간 3일 발간했다.
여기에 실린 1976년 LA 한인축제‘코리안 퍼레이드’의 장면은 한인들의 해외 이민 역사를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기록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1903년 하와이 이민자 여행권. 1903년 대한제국 유민원(1902년 신설된 해외 이민관련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하와이 이민자에게 발행한 여행권(여권)이다.<연합>
■한인 이민 역사 현황
한민족의 해외 이주는 150여년 전인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지배층의 수탈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던 농민과 노동자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만주, 하와이등지로 떠났다.
이후 1945년까지는 일제 통치하에 토지와 생산 수단을 빼앗기고는 중국과 일본으로 옮겼다. 이 시기 독립운동가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위한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광복 후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이민 정책을 수립한 1962년까지는 전쟁 고아와 유학생, 미국인과 혼인한 여성들이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 시기다. 그 뒤로는 정착을 목적으로 한 이민이 이뤄졌다.
외교부의 '2015년 재외동포현황'에따르면 2014년말 기준으로 178개국에 718만명 재외동포가 살고 있다.
중국(258만명)에 가장 많고 미국(223만명), 일본(85만명), 캐나다(22만명),우즈베키스탄(18만명), 러시아(16만명) 순이다.

초기 이민자 개척 농장의 모습. 아르헨티나 초기 한인 이민자들이 자신들이 개척한 한국인 농장 팻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이민사 1천여점 기록
행정자치부국가기록원은 국내외 한민족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화합과 상생의 공감대를 조성하기 위해 150여년 간 한민족의 이주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번 '기록으로 보는 재외한인의역사' 자료집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발간한 기’ 록으로 보는 재외한인의 역사’ 자료집. <연합>
이 자료집은 아시아, 아메리카, 유라시아·유럽 등 총 3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미주 한인들의 이민 역사 자료와 기록은 아메리카편에 수록돼 있다.
자료집에 담긴 한인 이주 기록 자료만 총 1,056점이나 된다. 종류도 사진, 문서, 신문, 서한, 박물 등으로 다양하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재외한인은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사연을 안고 세계 각지로 이주했지만 기록을 통해 보여지는 조국 사랑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었다"면서 “이자료집이 720만 재외한인의 삶과 애환을 달래주는 증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은 자료집을 국내외 도서관, 학회, 한인회 등 1,700여 곳에책자와 전자책으로 배포할 예정이다.
또 오는 7일부터는 국가기록원 웹사이트(www.archives.go.kr)에서도 자료집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968년 아시아인 최초 호주 초청 이민자 최영길 가족을 소개한 현지 신문기사의 모습. <연합>
■세계 각국 한인 이민 역사도
1950년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한 소년이 참전 호주군 제3대대 병사와 마주쳤다. 겁먹은 소년은 군인들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간청했다.
이로부터 18년이 흘러 소년은 30대 가장이 돼 아내, 딸과 함께 호주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굶주리고 겁에 질린 채 호주군에 발견된 소년최영길은 1968년 6월20일 호주 최초의 아시아인 초청 이민자로 시드니 땅을 밟았다.
현지 유력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이튿날 지면에 '호주군이 받아들인 전쟁 고아'라는 제목으로 최씨의이야기를 가족사진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했다. 현지 TV 등 여러 언론도 앞다퉈 최씨를 소개했다.
전쟁 중 최씨는 자신을 발견한 호주군의 보급·통역으로 근무했고 휴전 후 호주군 '전우'를 찾는 과정에서현지 참전협의회의 주선으로 이민길에 오르게 됐다.
당시 호주에는 극소수 한인들이살고 있었지만 당시 '백호주의' 호주정부로부터 이민초청을 받은 아시아인은 최씨가 최초였다. 호주에 정착한 최씨는 이후 현지 한인공동체 형성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번에 발간된 자료집에는 최씨를 소개한 시드니 모닝 헤럴드 기사 등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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