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로켓발사로 美·中 협상 국면전환…러시아, 막판 자국이익 관철

워싱턴DC 회동으로 대북 제재 결의안을 타결지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후 국제 사회가 대북 제재에 이르는 과정은 과거 어느 때보다 험난했다.
2일(현지시간)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내용 면에서도 '최강'이지만, 걸린 시간도 최장에 가까웠다.
이번 안보리 결의는 4차 핵실험이 감행된 1월 6일부터 56일 만에 나왔다.
2006년 1차 핵실험 때 제재까지 걸렸던 5일, 2009년 2차 핵실험 때의 18일, 2013년 3차 핵실험 때의 23일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북한이 1993년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을 때, 안보리의 결의까지 걸린 두 달에 육박한다.
안보리는 핵실험 직후 '신속한 제재'를 공언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던 셈이다.
이번 결의는 안보리의 주요 당사국들에겐 '고차원 방정식'이나 다름없었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라는 목표물을 향했지만, 미국과 우방, 그리고 중국·러시아의 대북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핵실험 당일 소집된 안보리 긴급회의는 당장이라도 응징에 나설 듯 규탄 분위기였지만, 실제 논의로 접어들자 제재 수위·범위를 놓고 북한이 아닌,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선(戰線)이 형성됐다.
중국 관리들은 공공연하게 '채찍'이 아닌 '대화와 협상'에 무게를 실었다.
중국은 원유 대북수송 금지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러시아는 대북 제재로 북한 주민이 고통받지 않아야 하며 북한 경제 또한 붕괴되면 안 된다면서 미국 주도의 고강도 제재에 제동을 걸었다.
북한을 응징하기 위한 제재 논의는 그러면서 답보에 빠졌다.
북한의 2월 7일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는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붓듯 국제 사회를 또 한 번 격앙시켰다.
유엔을 통한 다자 제재에서 벽에 부닥친 미국과 한국, 일본은 초강력 양자제재 카드를 꺼내들고 개별적인 대북 제재에 돌입했다.
한국은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했고, 미국은 대북제재법을 발효시켰으며, 일본도 북한 국적자·선박 입국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재의 시행에 들어갔다.
한미가 주한 미군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배치 문제에 대한 공식 협의를 시작하기로 하고, 중국이 이에 반발하면서 한반도 주변의 안보 지형까지 출렁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제재 논의에 재시동을 켠 것 또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였다.
미국의 한 관료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이 미국·중국 협상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이 거듭되면서 중국으로서도 강력한 대북 제재를 피해갈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의미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유엔 회원국들이 "이번에는 강력한 결의를 신속히 채택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중국을 압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터널의 끝'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미국 방문이었다.
2월 23일 워싱턴D.C. 회동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왕 부장은 '상당한 진전'을 이루며 대북 제재에 청신호를 켰고, 다음날 왕 부장과 수전 라이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를 최종 타결지었다.
중국이 협조적으로 돌아선 것은 중국에는 북한 제재보다 훨씬 민감한 사드 배치 문제에서 자국이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였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안보리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
미·중이 합의한 결의 초안은 2월 중 채택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 속에 이틀 뒤인 25일 안보리에서 회람되는 등 급물살을 탔다.
이때까지도 외교가는 '복병'이 안보리 안에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막바지에 결의안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 안보리 15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초안 문건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미·중 주도의 논의에서 소외된 불만의 표현이자, 훗날 대북 관련 협상을 내다보고 외교적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몽니'로 여겨졌다.
결국, 러시아의 제어로 2월 중 결의 채택은 불발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러시아의 물밑 협상 결과가 결의안에 반영되면서 러시아가 반대한 '진짜' 이유는 자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러시아의 요구로 결의안은 결국 일부 수정됐다.
대북 항공유 공급금지 항목에서 북한행 민항기에 대해 재급유를 할 수 있는 예외가 생겼고, 북한이 아닌 외국산 석탄이 북한 나진항을 계속 이용해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는 자국의 석탄 수출로인 나진항을 붙잡은 셈이다.
러시아는 이 외에도 '제재 초안 24시간 검토 관행'을 이유로 미국에 대북 결의 채택일을 3월 1일에서 2일로 하루 더 늦추도록 요구해 관철시키는 등 막판까지 목소리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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