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8학년인 주연이가 어느 날 밤에 할 이야기가 있다며 소파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자신의 미래가 매우 걱정된다는 것이다. 주연이는 선교사 부모를 따라서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4살 때부터 카자흐스탄에서 시작하여, 우루무치, 싱가포르, 한국, 다시 우루무치에서 살았고, 지금은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부모와 함께 살다가 내년에는 다시 선교지로 갈 것이다.
이렇게 자주 옮겨 다니면서 늘 친구가 없다고 불평했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공부에 몰두하고 있을 또래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선생이 되고 싶다고 하는 자신의 희망을 말했다. 자신이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직업이 안정되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그네처럼 부모를 더 따라 다니다가는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 아이가 스스로 자구책을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미안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그리고 주연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업이 우리에게 꼭 안정을 주는 건 아니란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안정을 주실 수 있단다. 아빠는 네가 무엇보다 주님을 깊게 만났으면 좋겠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누리기를 바란단다.” 대화를 마치고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나그네 인생을 산다. 우리가 나그네 삶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천국백성이 아님을 시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휴 생 빅토르 (Hugh of St. Victor)라는 12세기의 프랑스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고국에만 애정을 느끼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세계 모든 곳을 다 자기 고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타국처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사는 곳이 아무리 좋은 환경이며, 오래 살면서 공부도 하고, 직업도 갖고, 자녀를 낳고 키운 곳이라도 그곳을 낯설게 느낀다. 왜냐면 그곳이 본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신자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불렀다(벧전1:1)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진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했다고 말했다(히11:13).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이었다(히11:15). 사도 바울은 그런 면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다(빌3:20). 여기서 하늘에 있다는 것은 어떤 공간적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 즉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러고 보니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어느 한 사람도 나그네로 살지 않았던 사람이 없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아기 때부터 육신의 부모를 따라 애굽에 가서 나그네가 되셨고, 늘 정처 없이 사시다가 아버지 집으로 가셨다. 나는 선교사가 이런 면에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나그네로서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기에 좋기 때문이다.
이민자들도 나그네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이곳의 신자들이 한국교회의 신자들보다 선교사의 삶을 더 잘 공감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도 나그네 삶을 살면서 그 애환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나그네, 외국인들은 본향을 사모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사모한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본다. ‘주연이가 주님을 깊이 만나 성숙해진다면 나그네 삶을 불안하다고만 생각하지 않겠지. 지금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때가 되면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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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운 선교사(MVP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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