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음식을 먹고 물마시며 팔을 구부려 베개를 삼아 누어있어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는 말이 논어에 나온다. 의롭지 않은 부귀 보다는 가난해도 의롭게 살아 그 속에서 느끼는 만족한 삶이 보다 가치 있다는 공자의 생각을 드러낸 글이다.
경제학자들이 자주 쓰는 용어 중에 맞교환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것을 말함이다. 이것을 공자의 말에 적용해보면 대체로 부귀와 공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의한 일을 해야 하고 의로움을 지키다 보면 부귀공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부귀공명은 대부분의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이다. 이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투쟁하고 달려간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가난한 양반이 부귀와 공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몇 명의 청백리와 의롭게 살다간 사람들의 이름이 전설처럼 전해지지만, 과거급제한 대부분의 관리들이 부패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부패의 근원은 부귀공명이라는 가치가 권력이라는 또 다른 가치와 혼란스럽게 뒤섞여 서로 끊을 수 없는 고리를 맺고 있기 때문이었다. 권력이 없는 부귀공명은 실제로 불가능 한 것이었다. 따라서 경서가 가르치는 통치의 원리나 이상은 권력쟁탈을 위한 당쟁의 도구와 명분으로 전락하고 유가 정치의 이상이던 제세안민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의 끝도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그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다. 전직대통령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거나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 하는 것을 보면서 ‘열흘 가는 꽃이 없고, 십 년 가는 권력 없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공자님 말씀대로, 권력으로 이룬 부귀공명 속에서 참 만족이나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 참다운 삶의 만족과 성취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는 것일까? 고위관직을 지내고도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몇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대답은 명료하다.
살아가는 길이 빈한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인생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게 되고, 그 결과로 남긴 예술이나 글들이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것을 보게 된다. 공자께서 정치에 실패하고 천하를 10여년이나 방랑한 후, 마침내 후세에 뜻을 두고 교육과 저술에 전념한 것이 유교문화의 큰 바탕이 되었다.
북청으로 귀양 가던 이항복이 남긴 “철령 높은 곳”을 읊은 시조나 조선시대 명필 추사 김정희의 글씨도 제주도 대정현의 귀양살이 속에 완숙의 경지를 이루었다. 보길도 귀양살이로 일생을 보낸 윤선도의 삶도 그가 이룬 커다란 문학적 성취가 부귀공명이나 권력과는 먼 한적한 삶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을 보게 된다.
평범한 사람은 그런 점에서 귀양 갈 필요 없이 현재 자신의 삶을 살피고 그 삶 속에 이룰 수 있는 참 가치가 무엇인지를 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세상에서 알아주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삶은 짧은 것이요, 그 짧은 시간 속에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고 보람 있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것을 실천하며 사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요약하면 기업인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다가오는 죽음 앞에 깨달은 것은, 일터를 떠나면 자신의 삶에 즐거움이 많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부와 성공이 아니라 이와 관계없는 다른 것들, 예를 들면 예술이라든가 가고 싶은 곳을 가보고, 또는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좋은 관계를 맺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애를 그린 영화에서 그는 Treat yourself well, cherish others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었다.
오래 전에 선비 출신의 목사님이 남긴 찬미가에 “부귀공명 장수도 바람잡이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 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이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삶 속에 그리고 삶을 넘어선 곳에도 살아있는 참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것들을 생각하고 발견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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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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