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짜리 에세이 과제를 2장은 글로 쓰고 나머지 8장은 사진과 그림으로 채워 제출한 학생이 있었다. 이유를 묻는 교수의 질문에 “에세이를3장 이상 써본 경험이 없어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했다”고 학생은 대답했다. 교수는 당연히 낙제점을 주었다. 이에 학생 부모가 대학에 항의했고, 대학은 교수에게 학생의 기를 꺾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에서 벌어진 일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작문 지도교수는 “학생들이 인터넷을 이용한 리서치는 곧 잘하지만, 조사한 자료를 간결하고 조리 있게 정돈하여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피력했다.
대학생들이 글쓰기를 제대로 못한다고80%의 대학교수가 불평을 하고, 공립대학에서는 연간 30억 달러를 들여가며 글쓰기가 부족한 대학생들을 위해 보충지도를 한다. 교수는 짜증으로, 주민은 세금낭비로, 학생은 시간낭비로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니다. 누구의 책임일까. 노력부족인 개개인이 문제라지만 학교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글쓰기 수업시간은 일주일 평균 3시간이다. 집에서TV시청으로 보내는 시간의15%도 안 된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의75%가 에세이 과제를 내주지 않는다.
대학에서 조차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글쓰기를 집중 지도해야 하는 영문학부가 이데올로기 전쟁터로 변질된 것이 주된 이유다. 1966년 다트머스 대학에서 열린 영어작문 지도교수 회의는 글쓰기를 문법ㆍ논리ㆍ형식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잘못 쓴 학생의 에세이를 교정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그것도 학생의 자유다”라는 식으로 어떤 모양의 글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도권을 쥐었다. 학생의 자부심을 건드리지 않고, 그저 잘한다는 격려 일변도로 몰고 간 결과는 학생들로 하여금“나는 글쓰기를 잘한다”는 착각에 빠뜨렸다.
70년대에 들어서, 데리다, 푸코 같은 해체주의 사상가들이 주창한 주체의 소멸이론을 받아들인 대학은“작가는 죽었다”는 유행어를 만들고 작가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학생들에게 인식시켰다. 80년대는 다문화주의를 앞장세우고 인종ㆍ계급ㆍ성차별에 저항하기 위해“언어가 어떻게 사람을 차별하는가”라는 토론에 몰두하는 동안 글쓰기 교육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렸다.
이렇듯,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인해 글쓰기를 뒷전으로 밀어낸 대표적인 대학은 듀크대학이다.
인문사회 대학장은 이렇게 실토했다. “1980~1999년 사이에 재직했던 영문학 교수들이 글쓰기 지도는 팽개치고 막스주의, 페미니즘, 해체주의 이론 정치싸움으로 학생들을 기만했다. 듀크대학의 글쓰기 프로그램은 실패작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인터넷 채팅이 청소년들의 글쓰기에 또 다른 철퇴를 내렸다. “IMO, LOL, BRB” 같은 기본을 해체한 문장이 채팅화면을 통해 번졌다. <디지털이 만든 바보세대>라는 책에서 에모리대학의 바우어라인 영문학 교수는“독서와 글쓰기는 제쳐두고 동영상과 이미지에 빠져 머리가 텅 빈 청소년들을 보면 이 나라의 존재 가능성까지 의심된다”고 우려했다.
유튜브가 주도하는 이미지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의 의사소통 매체는 말이나 글이 아니다. 그들에게 롤모델은 헤밍웨이, 오웰 같은 작가가 아니라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이미지 마술사다. 그런데, 문자중심 구텐베르그 은하계의 끝자락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주지해야 할 것이 있다. 이미지시대가 본격화되었지만 여전히 대학과 사회는 글쓰기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기술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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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엘 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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