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말기획- 가정폭력 당하는 남편들
▶ ‘못난 놈’소리 들을까 신고도 못해, 한인상담소“5건중 1건 남성이 피해”
#한인 이모씨는 지난 밤 아내와 크게 다퉜다. 올해 초부터 비즈니스가 어려워지면서 부부간의 싸움이 잦아졌다. 아내는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다. 급기야 어제는 주먹으로 이씨의 가슴을 치더니 발길질까지 했다. 이씨는 홧김에 손이 올라갔다.
그러자 아내는 “때리기만 해봐라. 경찰을 부르겠다”고 더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가서 말도 못해요. 사내 자식이 여자한테 맞고 다닌다고. 내가 먼저 맞았다고 경찰한테 말하면 믿어줄까요?” 이씨의 하소연이다.
#아내와 별거 중인 최모씨. 오히려 집을 나와 아내 ‘잔소리’를 듣지 않으니 살 것 같다. 항상 신경질을 내고, 불만이 많은 아내.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항상 최씨의 잘못만을 드러내고 무시한다.
자존심이 상하고 수치스럽다. 이젠 ‘내가 못난 놈’이란 생각만 든다. 지인의 권유로 상담을 받았다. “아내 얼굴만 떠올려도 두렵고 무섭다고 했더니 카운슬러가 제가 정신적·감정적으로 학대를 당했대요” 아내의 행동이 학대였다니, 최씨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한인 남성들이 가정폭력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남성도 가정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으나 한인사회에는 이같은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배우자로부터 감정적·경제적 학대를 당하고 있어도 이를 가정폭력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주먹이나 손으로 맞거나, 발로 차이는 등의 신체적 폭력을 당해도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12년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남성 4명 중 1명은 가정폭력 피해자다. 여성은 3명 중 1명이 피해자다. 육체적으로 심하게 폭력을 당하는 경우는 여성이 5명 중 1명인 반면 남성은 7명 중 1명이다.
여성보다는 남성 피해자수가 적지만 통계상으로도 분명히 ‘매 맞는 남자’가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강간 피해자는 여성이 5명 중 1명, 남성은 71명 중 1명이다. 한인사회 남성 피해자 비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인가정상담소에 따르면 가정폭력피해자 상담 사례 5건 중 평균 1건은 남성이 피해자다.
전문가들은 남성 우월주의나 권위주의 등 한인사회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남성들은 육체적·심리적·경제적 폭력을 당하고 있어도 이를 묵인, 드러내기 쉽지 않으므로 피해 사례는 실제 집계보다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태여성보호센터 데보라 서 소장은 “한국 문화에서는 ‘바가지 긁는다’ ‘여자는 원래 그렇다’고 말하며 문화적으로 묵인되는 부분이 있는데 부부간의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깨어지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기를 죽이고, 자신의 뜻대로 컨트롤하려 한다면 이는 학대”라며 “기가 죽는다, 주눅이 든다는 말도 영어에는 없는 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이라고 해서 항상 ‘피해자=여성’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이 학대나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 이를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이라 해도 여성으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하거나 상대가 욕설을 하고 때린다면 1차적으로는 자신이 피해를 입었음을 인식하고, 같은 행동이 지속되기 원하지 않는다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혀야 한다.
한인가정상담소 안현미 상담가는 “남성들의 경우 상담 중에도 아주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다. 그만큼 남에게 말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심각할 수 있다”며 “자녀들 앞에서 부부간의 언어폭력, 신체폭력이 행해지고, 아이들이 이로 인해 심리적으로 힘들어한다면 이는 아동학대까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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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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