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상이 심해져야 병원 오는 한인환자들 안타까워”
건축가 꿈 키우던 중 심장수술 받은 후 의학에 관심
더 나은 치료위해 끊임없이 공부
환자에 믿음 주는 의사 되고파
즐거운 마음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의사. 환자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의사. 끊임없이 연구하는 의사. 정말 많이 알고 뛰어난 실력이 있는 의사. 가정의 행복에 최선을 다하는 의사. 20년차 이현수 피부과 전문의는 그런 의사다.
건축가의 꿈
그는 1959년 6월 서울 장위동에서 태어났다. 3남1녀의 셋째다. 형과 누나 그리고 남동생이 있다. 초등학교는 기독교 학교인 대광을 다녔다. 우수한 교사와 체벌이 전혀 없었던 좋은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민 오기 전 잠시 다닌 삼선중학교는 전혀 딴판이었다. 선생님의 체벌은 물론 학생들 간의 폭행도 있었다. 1960년대 당시 대부분 중학교의 모습이 그랬지만 지금도 떨쳐버리고 싶은 기억이다.
그는 어려서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디자인에도 취미가 있었다. 손재주도 남달랐다. 건축가인 외삼촌의 모습이 멋있게 보였다. 그때부터 그는 건축가의 꿈을 키웠다. 지금은 전문의지만 건축가의 꿈도 진행형이다. 그래서 건축학 책을 읽는 게 취미다. 현재 자신이 일하는 병원 디자인도 손수 했다. 앞으로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도 직접 설계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는 선천적 심장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허약한 체질로 초등학교 체육시간에는 교실을 지켜야 했다. 1973년 13세 때 중학교 1년을 다니다 가족과 함께 플러싱으로 이민 왔다. 이민 와서 15세 때 심장수술을 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 건강한 신체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그 때부터 의학에 관심을 가졌다. 현대의학으로 환자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의사가 되는 것이 건축설계사의 꿈을 앞서 가지는 못했다. 그는 1978년 플러싱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예일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도중에 한국 연세대학교에 가서 1년 동안 공부를 했다. 하지만 1980년 광주사태로 학교수업이 중단되면서 다시 예일대학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대학 3학년 때 건축공학도의 길을 잠시 접어야 했다. 그 당시 경제적 불투명으로 인해 보다 안정적인 직업인 의사가 되려고 의대진학을 결정한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의사를 꿈꾼 게 아니었다.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미국에 와서 심장수술을 받은 후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지금은 피부가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꿈을 먼저 이룬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건축가의 꿈은 접지 않고 조금씩 이뤄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피부가 전문의
그는 뉴욕주립대학인 스토니부룩 의대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전문의보다 병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면역학을 전공했다. 병리학 연구에 집중했고 면역학 분야의 경험을 쌓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병리학자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생겼다.
방부제의 일종인 화학약품 포르말린 냄새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거기에 죽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보다는 살아있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병리학자가 될 수 없는 여건 때문에 피부과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후 뉴욕대학(NYU) 의대에서 3년 동안의 피부과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고 1년 동안 피부 병리학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피부과 전문의와 피부 병리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후 1996년 플러싱에 ‘이현수 피부과 병원’을 개업한 후 20년 동안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전 뉴욕대학 의과대학의 피부과 임상교수였으며 현 록펠러 대학의 임상교수를 맡고 있다.
믿음을 주는 의사
그는 다양한 인종의 환자와 다양한 연령층의 피부질환 환자를 진료한다. 그래서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환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그들의 문화적 관습 차이로 인해 진료와 상담할 때 설명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환자들과 많은 대화를 한다. 정성을 보여주며 그들의 마음을 얻는데도 노력한다.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책임지겠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10%의 환자를 위해 90% 공부를 한다. 환자들에게 더 나은 치료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의료인이다. 피부과는 드문 병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초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도입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공부를 꾸준히 한다. 공부를 하면서 환자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폭도 넓이고 환자를 위하는 마음도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환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즐겨하는 그가 매번 긴 상담과 설득의 과정을 거쳐 치료에 임하게 한다. 그 역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환자들에게 피부질환과 치료를 올바로 이해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공부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환자가 찾아와도 피부질환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통해 완벽한 치료를 함으로써 믿음을 주는 의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피부암 남 얘기가 아니다
눈으로 보면서 바로 진료할 수 있고 치료과정과 효과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피부과의 매력으로 꼽고 있는 그는 한인사회에 피부암의 증가를 경고한다. 그는 20년 전 개업당시에는 한인 피부암 환자는 1년에 6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개월에 12명 정도로 많아졌다며 아직 백인들보다는 적지만 걱정할 수준으로 점점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음을 강조한다. 한인들이 피부암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야외활동 증가에 따른 자외선 노출 빈도가 높아지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그는 한인 피부암 환자들은 시간을 지체하며 증상이 심해져 마지막 보루로 피부과를 찾아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물론 눈으로 볼 때 병변의 구분이 어렵다. 때문에 갑자기 생긴 피부점이나 기존에 존재하던 점의 크기나 모양이 달라졌다면 피부암을 의심해봐야 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피부암 진료를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자식은 부모의 그림자를 보며 자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의 소중함을 배웠다. 아버지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셨고 가족의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어릴 때부터 주말마다 가족 여행을 다니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교육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도 가족들과 여행을 자주 다닌다.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도 한다. 가능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많이 갖고 있다. 3자녀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20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자식을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들이다. 가족을 깊게 생각하는 그이기에 아주 강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우선, 두피에 생긴 흑색종 암을 완치했는데 3년 뒤 폐로 전이돼서 찾아온 환자다. 그는 자신의 암재발로 죽음은 앞둔 상황에서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자신보다 아이 걱정이 더 컸기 때문에 아들에게 종합검사를 받게 하면서 정기검진의 중요성을 교육시키는 자식사랑을 실천했다고. 또 다른 사례는 아이가 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 이야기다. 그는 아이에게 치료할 수 있다는 용기와 편안함을 주면서 치료를 위해 도움이 필요한 의사를 찾아다니는 것을 비롯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런 아버지의 자녀사랑이 너무나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것이다.
그는 대학캠퍼스에서 예일대학 3학년 때 아내를 처음 만났다. 나이는 두 살 어렸지만 같은 학교 정치학과 3학년이었다. 졸업 후에는 각자의 직장 때문에 8년 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연애를 계속됐고 의대를 졸업한 후 1990년 결혼했다. 그리고 슬하에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 2명을 두고 있다. 그에게 아내는 늘 편안함을 준다. 뉴욕시정부 소속 변호사를 하다가 자녀교육을 위해 가정주부로 돌아 온 아내 역시 항상 남편에게 일보다 가정의 중요함을 심어준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의 철학인 그는 서반어와 중국어를 배우며 늘 뉴욕타임스를 보시는 88세 어머니와 붓글씨를 배우는 90세 아버지의 모습처럼 스스로도 끊임 없이 자기계발에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은퇴한 후에도 후배양성과 영구적으로 진료를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이기도 한다.<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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