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췌장암으로 별세한 진도희는 1970년대 인기를 끈 영화배우다.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문학소녀’였다. 작가의 꿈을 위해 서라벌예대(중앙대로 편입)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이후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편입, 교내 연극으로 알게 된 국립극단장의 권유로 MBC 공채 탤런트 4기에 응시해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1972년 영화 ‘작크를 채워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뒤 ‘대추격’ ‘일요일에 온 손님들’ ‘서울의 연인’ 등에서 잇따라 주연을 맡으며 주목받았다. ‘서울의 연인’으로 ‘제10회 백상예술대상’(1974)에서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서구적인 외모로 신성일 등 당대 톱 남자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1973년 이란 테헤란 국제영화제에 한국 여배우 대표로 참석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진도희는 재벌 2세와 열애설 등에 휘말리며 스크린을 떠났다.
뜻하지 않게 곤혹스러운 일도 겪었다. ‘젖소 부인’으로 유명한 에로 여배우가 진도희라는 예명을 그녀와 함께 사용하면서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기도 했다.
미국에서 사업가로도 활약했는데 어릴 적 꿈을 살려 지원한 미주 한국일보의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문인으로 여러 글을 썼다.
<이재훈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