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측의 정책 놓고 학생들 토론회 열어 학교가 보유한 친이스라엘 기업 주식 ‘매각·불매 촉구 결의안’ 채택여부 표결
▶ 학교측에 결과수용 대한 강제성은 없어
시카고 델폴대학에서 ‘팔레스타인 정의구현 학생단’ 소속 대학생들이 친 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투자회수 결의안 표결에 앞서 득표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 ‘BDS’ 운동을 아시나요
대강당은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UC데이비스 강당에 입장하는 일부 참석자들은 팔레스타인 전통 머리수건을 썼고, 맨 앞줄 좌석에 앉은 한 학생은 이스라엘 국기를 어깨에 둘렀다. 참가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학생처 직원이 토론회의 룰을 조목조목 읽어 내려가며 “그 어떤 경우에도 참가자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경고했다. 이어 학생회 간부가 토론회 주제를 소개했고, 곧바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집단생존권과 인권보호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하는 참석자들 사이에 불꽃 튀는 설전이 벌어졌다.
최근 들어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흔히 볼수 있는 ‘BDS’ 토론회의 현장 풍경이다.
BDS란 ‘불매·투자회수·제재’ (boycott divestment-sanctions)의 약자로 친이스라엘 기업들을 겨냥해 전국의 대학가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일종의 학생운동을 일컫는다.
학생회가 주관하는 BDS의 기원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팔레스타인 단체들은 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웨스트뱅크와 가자 및 동 예루살렘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주었다.
즉 미국의 지원 하에 무시무시한 화력으로 무장한 이스라엘을 상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의 무모한 ‘맞장’을 뜨는 대신 그들이 부당하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이익을 공론화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지지여론과 대 이스라엘 집단제재를 끌어내는데 주력했고, 이를 계기로 미국의 대학가에 BDS 운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조’ BDS 운동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해 제시된 비폭력적 운동방식이 바로 BDS다.
UC데이비스의 강당에 모인 학생들은 정해진 룰을 준수하며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벌인 후 투표를 통해 학교 재단이 보유 중인 친이스라엘 업체들의 주식매각과 불매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표면적으로 토론에 회부되는 주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으로 국한되지만, 친이스라엘 학생단체들은 BDS 운동을 반대유대주의의 다른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거주지인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운 이후 신생 유대 국가의 가장 가까운 우방을 자처해온 미국에서, 그것도 ‘지식인들의 요람’이라는 대학가에서 BDS 운동이 일종의 ‘의례’로 자리를 잡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대학들은 예외 없이 재단기금으로 ‘돈놀이’를 한다. 개인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돈 놓고 돈 먹기’식의 재테크로 지갑을 불린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장학제도를 확충하고 학내 제반시설과 교직원들의 처우 개선”에 사용된다.
대학재단의 신탁기금 관리자들은 안전하면서도 투자수익이 높은 기업들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투자하는데 이 중에는 상당수의 친유대계 기업들이 섞여 있다. 사실 유대계 기업들을 제외할 경우 그에 버금갈만한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학생회가 투표를 통해 친유대계 기업에 대한 투자금 회수를 결의했다 하더라도 그 같은 결정을 받아들인 학교는 이제까지 단 한 곳도 없었다.
자금운용은 재단기금 신탁관리자들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결정에 전혀 구속을 받지 않는다. BDS는 ‘불임’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지닌 운동인 셈이다.
그래도 묵중한 ‘상징적인 가치’ 탓에 대학가의 BDS 운동은 나름대로 확실한 존재이유를 획득했다.
올해 1월 한 달 동안 투자 회수안을 학생들의 투표에 회부한 종합대학이 네 곳을 헤아린다는 사실만 보아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BDS 캠페인은 학생회가 표결절차를 주관하지만 투표에 회부되는 결의안을 학외 단체들이 작성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미국인 무슬림’이라든지 퀘이커교도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아메리칸프렌즈 봉사단’ 혹은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등이 결의안 작성에 끼어든 대표적 외부단체다. 반면 대표적인 학내 조직으로는 ‘팔레스타인 정의구현 학생단’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회 임원선출 때 입후보자들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한 견해를 묻기도 한다. 이로 인해 후보들의 정견발표는 ‘반유대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치열한 설전으로 발전하곤 한다.
2009년 컬럼비아대학 졸업생으로 진보성향의 친이스라엘 로비단체 ‘J 스트릿’의 학내조직인 ‘J 스트릿 U’의 사무국장을 역임한 이이라스텁은 “BDS 운동의 활성화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이제 BDS는 정기적인 학내운동으로 자리를 굳혔다”고 말했다.
UCLA의 박사학위 후보이자 ‘팔레스타인 정의구현 학생단’의 회원이었던 라힘 크루와는 “BDS가 대학 커뮤니티에서 상당한 양의 토론과 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대화는 양 진영의 외부 운동가들이 만족할 만한 대리전의 양상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지지자들은 “불매운동과 투자회수는 평화를 일구어내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인 가자에 정착촌 건설을 확대한 데 대한 반발로 BDS 운동에 불이 붙었지만 BDS 지지자들은 이스라엘 점령지의 유대인 정착촌 설립 확대라는 쟁점을 전체적인 반이스라엘 정서로부터 따로 떼어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전체로 볼 때도 이스라엘의 상품과 문화행사를 거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강압적 정책에 신물이 난 미국인들을 증심으로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여론이 빠르게 몸피를 불려가고 있다는 얘기다. 투자회수 요구에 합세하는 교회 역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이 같은 운동에 가장 큰 힘이 실리는 곳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대학가다.
‘운동권’ 학생들은 이스라엘 정책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강연회와 웍샵을 조직하는 한편 모의 이스라엘군 검문소와 웨스트뱅크를 둘러싼 모형 장벽을 교내에 설치, 현지 상황에 대한 ‘의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모형 장벽에는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벽’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에 맞서 친 이스라엘 학내 그룹들은 수시로 강연회를 개최해 반격에 나선다.
UC데이비스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최종 표결은 수일간에 걸친 토론회에 뒤이어 실시된다.
2012년 이후 BDS 결의안에 표결을 한 대학은 20~30여곳.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결의안을 받아들인 대학은 아직 없다.
대학 당국의 투자를 제한하는 기준은 단 하나. 유엔으로부터 집단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한 국가의 기업들은 투자대상에서 제외된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이스라엘이 유엔으로부터 전쟁 범죄국으로 지정된 경우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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