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운 떡가루 같은 눈이 강풍에 실려 앞이 보이지 않게 세차게 내렸다. 마치 하늘에서 바람에 날리는 흰색 레이스 커튼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눈이 쌓이기 시작하자 아래층 할아버지 ‘존’이 긴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 콘도는 1, 2, 3층으로 여섯 가구가 산다. 젊은 이, 나이 많은 이, 각 나라별로도 골고루 섞여 산다. 5년여 전 존 부부가 우리 아래층에 이사 오셨다. 자기 부모가 이 근처에 사시므로 도와드리기 위해 이사 했단다. 60대 후반의 노부부는 기타솜씨와 노래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교회에서 매주 기타를 치며 예배를 인도한다고 한다. 항상 친절하게 인사하며 이웃과 잘 어울리시는 분들이다. 자기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한다. 부인과는 고등학교시절부터 사귀었다니 정말 잉꼬부부다. 자신은 군인 출신, 자기 아버지도 퇴역군인이며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하며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더 반가워했다.
이렇게 평범하고 자상한 할아버지 존의 진가는 겨울철 눈이 내리고부터였다. 눈이 쌓이는 날이면 여섯 집들의 차를 하나도 빠짐없이 치운다. 위층 젊은 부부의 차도, 1층의 다리 아픈 할머니 차도, 내 차도, 날씨가 매섭게 차고 눈이 깊숙이 쌓이는 날에도 몇 차례씩 밖으로 나가 묵묵히 이웃들의 차에 쌓인 눈을 치웠다.
폭설이 내리던 날, 옆 콘도에 사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나와 굴을 파듯 눈을 파헤쳐서 자기 차들을 눈 속에서 찾아내고 또 차가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나갈 때 우리 동은 다른 이웃과 달랐다. 옆에 늘어선 차 순서대로 하나 씩 치워 나가며 주변의 길을 틔우고, 한 차가 깨끗이 끝나면 다른 차를 옮기고, 다리 아픈 할머니는 핫 초콜렛을 끓여 내와 식기 전에 마시라고 권한다. 우리 동의 사람들이 눈 속에서 펼친 차 파티는 실내의 티 파티보다 더 훈훈하고 화기애애했다. 이로 인해 가족 같은 ‘이웃사촌’의 정이 쌓여갔다.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를 아꼈다. 내 삽에 든 눈이 무거워 보이면 위층 젊은이가 얼른 받아 저 멀리 눈을 가져다 버리고, 서로 어울려 작은 농담에도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힘든 줄 모르고 눈을 치웠다.
할아버지 ‘존’ 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씨가 이웃을 감동시켰고, 그 감동에 이젠 이웃전체가 서로 돕는 화기애애한 한 가족이 되었다. 사랑과 배려 그리고 헌신의 파동은 실로 놀라웠다. ‘한 사람의 선한 힘’이 우리 주변을 밝히고 우리 안에 잠재해 있던 선(善)을 끌어내 큰 힘을 발휘하며 겨울추위를 잊게 한다. 존,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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