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윤씨, 1969년 발표곡 음원사이트서 찾아
놀웍에 거주하고 있는 이기윤씨는 자신의 보물이라며 딸 제시카 이씨의 사진과 그 당시 사용했던 테입 레코더를 보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김영재 인턴기자>
“꿈을 향한 1%의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희망이 아주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남녀노소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온라인을 통해 각종 실생활이 가능해진 요즘 스마트폰은 물론 이메일 보내는 방법조차 모르는 한 한인이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통해 평생을 염원해 왔던 소중한 꿈을 찾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한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샌버나디노 카운티 셰리프국의 경관 배지를 단 제시카 이(26)씨의 아버지 이기윤(65)씨이다.
이씨는 어려서부터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지난 1969년 레코드회사 오아시스에서 실시한 신인가수 모집에 합격했다. 1년 동안 지도를 받은 끝에 ‘유성’이란 예명으로 두 곡이 실린 음반을 1971년 4월에 발표했다.
하지만 가수의 꿈을 이룬다는 기쁨과 기대도 잠시 여러 가지 집안 사정과 발표한 노래가 당시 시대와 맞지 않는 탄식조의 노래이기 때문에 방송에 적합하지 않다는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그 노래는 대중에게 빛을 보지 못했고 이씨는 1979년에 도미하게 됐다.
미국 땅을 밟고 나서도 가수가 되겠다는 희망은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가수가 되는 꿈을 접는 대신 잃어버린 노래 즉, 그 당시 미발표한 두 곡의 노래가 담긴 레코드판을 찾기로 결심했다.
이에 이씨는 지난 1993년과 2000년도에 한국을 방문해 그 당시 레코드회사, 작곡가 등 다방면으로 알아봤지만 판은 찾을 수 없었고 희망은 사라지는 듯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씨는 평소처럼 아내와 함께 ‘가요무대’ 프로그램을 빌리기 위해 방문해 왔던 비디오 대여점에서 컴퓨터 수리를 하기 시작하던 한인과 함께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직후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음반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한인의 도움 끝에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이씨는 끝내 두 곡을 찾을 수 있었다.
이씨는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 당시 제 심장이 뛰고 두 곡뿐 만아니라 그 판에 실렸던 노래 전부를 음원 사이트에서 찾아냈다”며 “이는 40여년 만에 잃어버렸던 제 꿈을 찾는 것과 같아 눈물이 나며 벅차올랐다”고 그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그는 현재 한국전 참전용사로 참전했던 88세 고든 그린의 간병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고된 나날들이지만 그 노래들을 들으며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지금까지 가수는 되지 못했지만 현철, 송대관씨 등에 섞여 가요무대에 한 번 서보는 것이 마지막 꿈입니다”고 말하며 “1%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희망이 아주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라며 웃었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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